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0년(영조 36)에 풀려나 1763년(영조 39) 장령, 다음 해 헌납(獻納), 1766년(영조 42)에 사간이 되었다. 1769년(영조 45)에 사간으로 있으면서 임금은 만기(萬機: 정치사의 모든 기본과제)를 두루 살펴야 한다는 소를 올려 영조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 뒤 집의(執義)·사간·부수찬을 지냈다. 집의로 있을 때 세손의 청정(聽政)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사간·부호군·경기수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7년(정조 1) 함경도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자 북관감진어사(北關監賑御史)로 임명되어 10개읍의 전세(田稅)를 탕감해주고 굶주린 백성 20여만명을 구휼하였다. 이 공로로 예조참의에 승진되었다.
그 뒤 1778년(정조 2) 동부승지, 1781년(정조 5) 참찬관·승정원우승지·대사간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791년(정조 15) 공조판서·대사헌을 끝으로 기로소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몽오집(夢梧集)』
- 『명의록(明義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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