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과 더불어 금지되었던 정당 및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이 1963년 1월 1일을 기하여 재개되자, 허정(許政)을 중심으로 한 구정치세력의 일부가 같은 해 4월 이 당을 만들었다.
중앙간부진은 위원장 허정, 부위원장 이상철(李相喆)·이갑식(李甲植), 고문 이병헌(李炳憲) 외 5인, 기획위원 장기영(張基永)·김수한(金守漢) 외 13인, 총무위원장 이호(李澔), 조직위원장 송방용(宋邦鏞), 선전부장 송원영(宋元英) 등이었다.
강령은 민족주의·자유민주주의·자유경제체제 등을 그 중심내용으로 하였다. 그러나 1963년 10월 15일의 대통령선거에 야당의 단일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야당통합운동이 벌어져 신정당도 이에 참여하게 되었다.
1963년 7월 신정당의 허정 위원장, 민정당(民政黨)의 김병로(金炳魯) 대표최고위원, 민우당(民友黨)의 이범석(李範奭) 고문의 3당 무조건통합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이에 따라 민주당을 제외한 신정당·민정당·민우당 및 무소속의 4정파통합이 급진전되었다.
결국, 같은 해 9월 통합신당인 국민의 당이 정당등록을 마쳐 공식 출범하게 되었지만, 대통령후보 지명을 놓고 민정당계와 비민정당계가 대립하게 되어, 같은 달 민정당계는 윤보선(尹潽善)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하고 국민의 당을 이탈하였다.
이에 따라 국민의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민정당계와 신정당계의 갈등은 신정당계의 승리로 돌아갔으나, 국민의 당은 당초 목적이었던 범야세력의 통합이라는 과제는 이룩하지 못하고 신정당의 발전적인 당명 개칭에 불과한 결과를 맺고 말았다. 1964년 2월 25일 자진 해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