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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서울신문사에서 『매일신보』 후속으로 발행한 시사적인 성격의 월간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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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6년, 서울신문사에서 『매일신보』 후속으로 발행한 시사적인 성격의 월간 잡지.
개설

서울신문사에서 발간하였다. 1946년 1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이던 『매일신보(每日申報)』가 『서울신문』으로 바뀌면서 『매일신보』의 허물을 조금이라도 더 씻기 위하여 이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크기는 A5판, 면수는 창간호만 148면이었으며, 평균 220면을 웃돌았고, 때로는 300면이 더 될 때도 있었다. 일반 월간 잡지들은 창간되었다가는 몇 호 만에 폐간된 경우도 많았으나 『신천지』만은 서울신문사의 힘으로 꾸준히 발행되어 한국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지식층의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 부득이 휴간하였다가 1951년 1월에 한권을 내고, 다시 휴간하였다. 1951년 12월 속간하였다가 일시 휴간을 한 후 1954년 12월부터 다시 속간하여 1954년 말까지 발행을 계속하였다.

더욱이 『신천지』는 서울신문사의 중역들과 편집국장·문화부장까지 참석하는 편집회의를 열어 그 회의의 결정을 서울신문사의 출판국장이 실행에 옮기도록 되어 있어서, 시사적인 감각과 국제적인 감각이 고루 반영된 균형 있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는 평을 받았다.

내용

창간호에는 그 시대의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는데, 인물소묘에 안재홍(安在鴻)·송진우(宋鎭禹)·여운형(呂運亨)과 함께 좌익작가인 임화(林和)의 「박헌영론(朴憲永論)」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좌익극렬 학생단체이었던 학병동맹(學兵同盟) 맹원들의 귀환보고좌담회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었으며, 「어떠한 형태의 정부를 원하나」·「한자폐지의 가부, 국문횡서의 가부」의 설문응답자 중에 임화·이원조(李源朝)·이태준(李泰俊) 등 좌익계열의 이름이 등장하였다.

1946년 8월호에는 「3상회의(三相會議)를 어찌하여 지지하는가」라는 공산당원 이강국(李康國)의 신탁통치 지지이론까지 실려 있을 정도였다. 이 때의 서울신문사 사장에는 하경덕(河敬德), 편집국장에는 윤희순(尹喜諄), 출판국장 겸 편집인 명의는 정현웅(鄭玄雄)으로 되어 있었다.

그 해 10월에는 편집국장에 김무삼(金武森), 1947년 9월에는 정우홍(鄭宇洪), 1948년 3월에는 이건혁(李健赫), 1948년 10월에는 전홍진(全弘鎭)으로 바뀌었고, 1949년 8월에는 사장 겸 발행인이 박종화(朴鍾和)로, 편집인 겸 출판국장은 김진섭(金晉燮)으로 바뀌었다.

1951년 12월에는 출판국차장에 김동리(金東里), 1952년 5월에는 발행인에 전무이사 박현욱(朴玄煜), 출판국장도 장만영(張萬榮)으로 바뀌었다.

이 같이 편집인이 바뀌는 동안 사회상도 달라졌고, 또 6·25전쟁을 겪는 동안에 편집진과 서울신문사 사시(社是)의 변화와 함께 잡지 『신천지』의 내용도 차차 변해 오다가, 6·25전쟁을 기해서 크게 우선회하여 정부와 여당을 뒷받침하는 선전성이 농후해졌다.

이와 함께 변한 것이 책값이었다. 이는 당시의 물가상승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1946년 1월의 창간호는 6원, 2호(3월 발행)는 부피가 커서 15원, 1947년 1월호는 80원, 1948년 송년호는 250원, 1950년에는 300원, 1952년에 들어서는 7,000원까지 하였다가, 1953년 4월 다시 속간하였을 때는 150환이었다.

비록, 광복 직후의 극렬 좌익인사들의 글을 싣기는 하였어도 10년 가까이 발행되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적지 않게 이바지한 월간 잡지였다.

참고문헌

『한국잡지총람』(한국잡지협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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