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 언론·출판
  • 문헌
  • 현대
홍찬이 『평화일보』를 개제하여 1949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이칭
  • 이칭평화일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제안 (전 원광대학교, 언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평화신문 미디어 정보

평화신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홍찬이 『평화일보』를 개제하여 1949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내용

1949년 10월 18일 홍찬(洪燦)이 『평화일보(平和日報)』의 판권을 양우정(梁又正)으로부터 물려받아 제호를 바꾸어 창간하였다.

『평화일보』의 지령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사옥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에 있었다. 초창기에는 블랭킷판 양면 조간으로 발행하였다.

6·25동란 동안 대구로 피난을 하였던 이 신문은 1950년 7월 3일부터 최상덕(崔象德) 등이 전단형(傳單型)의 호외를 제작, 간단한 보도를 하였고 공산치하의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비행기를 이용하여 공중살포를 하기도 하였다.

1955년 10월 21일 「출판물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자 이를 반대하였고, 1957년 11월 선거법개정안에 언론조항이 삽입되자 이 법도 반대하였으나, 그 기본적인 입장은 이승만(李承晩)·이기붕(李起鵬)을 지지하는 적극적인 여당지의 성격을 띠었다.

1960년 11월 1일을 기하여 조·석간제를 채택하고 매일 8면을 발행하여 신문의 쇄신을 기하려 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61년 2월 1일김연준(金連俊)에게 판권이 넘어가 『대한일보(大韓日報)』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