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구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애국단, 혈복단 등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2년(고종 19)
  • 출생지충청남도 논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동걸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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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애국단, 혈복단 등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논산 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의 지시로 서울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취임하였다.

그 뒤 조직확대를 위하여 권인채(權仁采)를 통하여 김재근(金載根)으로 하여금 강원도 철원에 지단(支團)을 설립하게 하였으며, 충청남도·전라도 등지에도 지단을 조직하였다. 그 해 6월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특파한 김태원(金泰源)과 함께 국내연락망을 확보하기 위하여 연통제(聯通制)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해 11월에는 김교선(金敎善)·안교일(安敎一)·신봉균(申鳳均)·신상균(申相均)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한 비밀결사 혈복단(血復團)을 조직하였으며, 한편 안교일 등과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할 것을 계획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혔다.

그 뒤에도 애국단의 활동을 주도하였는데, 1920년 이 단의 조직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붙잡혀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출옥 뒤 1927년 잡지 『심경(心鏡)』에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글을 싣는 등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다시 잡혀 징역 3년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병을 얻어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곧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 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 - 『3·1운동비사』(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 - 『조선병합십년사(朝鮮倂合十年史)』(조선출판협회, 1924)

  • - 『朝鮮獨立運動』 Ⅰ(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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