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 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의 지시로 서울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취임하였다.
그 뒤 조직확대를 위하여 권인채(權仁采)를 통하여 김재근(金載根)으로 하여금 강원도 철원에 지단(支團)을 설립하게 하였으며, 충청남도·전라도 등지에도 지단을 조직하였다. 그 해 6월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특파한 김태원(金泰源)과 함께 국내연락망을 확보하기 위하여 연통제(聯通制)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해 11월에는 김교선(金敎善)·안교일(安敎一)·신봉균(申鳳均)·신상균(申相均)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한 비밀결사 혈복단(血復團)을 조직하였으며, 한편 안교일 등과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할 것을 계획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혔다.
그 뒤에도 애국단의 활동을 주도하였는데, 1920년 이 단의 조직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붙잡혀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출옥 뒤 1927년 잡지 『심경(心鏡)』에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글을 싣는 등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다시 잡혀 징역 3년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병을 얻어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곧 순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