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 내집(內集) 가운데 수록되어 있다.
1564년(명종 19)에 쓰여진 것으로서, 이구(李球)가 마음에 체용이 없다는 것을 김취려를 통해 질문했기 때문에 이황이 이를 비판하여, 마음을 주체와 작용의 2원으로 나누어 보는 입장을 밝힌 글이다.
비록 진(秦)나라 이전에는 체용(體用)이라는 글자가 없으나 송유(宋儒)들은 도(道)와 심을 모두 그렇게 나누었다. 곧, “고요함과 느낌을 체와 용으로 삼은 것은 『주역』에서 근본하였고,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을 체와 용으로 삼은 것은 『대기(戴記)』에서 근본했으며,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을 체와 용으로 삼은 것은 자사(子思)에서 근본하였고, 성(性)과 정(情)을 체와 용으로 삼은 것은 『맹자』에서 근본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사람의 마음은 주체와 작용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이구의 주장은 “마음에 체와 용이 있지만, 그 근본을 보면 체용이 없다. 동과 정은 참된 이치이고 체용은 빈말이니, 동정(動靜)이 바로 체용이다. 체자(體字)는 구체적 존재에서 쓰는 말이며, 용은 그 물체의 움직임에서 쓰는 말이니 움직임 전에 작용이 없고, 존재 이전에 주체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도리란 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정의 가능성만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이 동정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참된 이치인데, 당시의 학자들이 동정을 허무 개념인 체용으로 대체하려 한다고 비판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현상의 변화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온 것이다.
이황은 이것은 형이하(形而下)를 말하는 데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본체와 현상을 나누어 양쪽 모두에 체와 용이 있다고 하였다.
이황에 의하면, 본체에 있어서 형상이 갖추어지기 이전에 아무런 조짐도 없는 것이 체이고, 그러면서 그곳에서 모든 현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이 용이다. 즉, 마음이 빈 듯하며 고요한 것이 체이고, 그 속에 밖으로 나타날 모든 감정이 내포된 것이 용이다. 사물에 비유하면 배나 수레가 갈 수 있는 것이 체이고, 그 배가 물 위를, 또 그 수레가 땅 위를 움직여가는 것이 용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지닌 사람으로 이황은 양시(楊時)·호굉(胡宏)·호실(胡實)을 비판하였다. 호실은 동정을 얕은 개념으로 보아 절대를 가정하였고, 이구는 체용을 얕은 개념으로 보아 체용이 없는 것을 상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적으로는 본체와 현상이 하나라고 보면서도, 논리적으로는 현상뿐만 아니라 본체도 주체와 작용의 2원으로 나누어볼 것을 주장한 것으로서, 이황의 이원론적 견해가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