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

  • 역사
  • 지명
  • 삼국
삼국시대,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정학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고학)
  • 최종수정 2024년 07월 3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시대,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내용

『삼국유사』 5가야조에는 아라가야 또는 아야가라(阿耶加羅),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아시라국(阿尸良國) 또는 아나가야(阿那加耶),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와 『일본서기』에는 안라(安羅)라고 해 그 명칭이 출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라 · 아시라 · 아야 · 아나 · 안라 등은 모두 우리 말의 음운(音韻)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라가야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의 안야국(安耶國)으로서 변한 12국 중 하나이다. 따라서 3세기경까지 가야 지방은 변한 12국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변한 12국은 그 뒤 6가야로 되었던 듯하다. 12국이 6가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시대에 따라 나라의 수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6가야로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자료가 없다.

『일본서기』에는 더 많은 수의 가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에 실린 가야 관계 기록은 주로 백제측 기록에 근거한 것인데, 가야의 이름 중에는 작은 단위 촌락의 사회 집단 이름도 섞여 있는 듯하다.

아라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을 중심으로 한 나라였다. 남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어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일찍부터 금관가야와 함께 일본과의 교통이 많았다. 따라서 이 지역은 일찍이 신라에 의해 점령되어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이 설치되었다.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532년에 멸망한 뒤에는 아라가야가 일본과의 교섭에서 중심이 되었던 듯하다. 함안 지방에는 말이산(末伊山)에 상당히 큰 가야시대의 무덤이 많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국세(國勢)가 얼마나 강대했는지를 말해 준다. → 가야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삼국지(三國志)』

  • - 『일본서기(日本書紀)』

  • - 『가야연맹사』(김태식, 일조각, 1994)

  • - 『任那と日本』(金廷鶴, 小學館, 1977)

  • - 「신라소경고(新羅小京考)」(임병태, 『역사학보』 35·36합집, 1967)

  • - 「가야경역신고」(김정학, 『부산대학교논문집』 21, 1976)

  • - 「복원가야사」(천관우, 『문학과 지성』 28·29·31, 1977·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