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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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외위(外位)의 관등. 신라는 6세기 초에 이르러 국가통치체제를 강화하면서 지방세력가들을 지배체제 속에 포섭하기 위해서 그에 알맞은 관등을 주었는데, 이를 왕경인(王京人)을 대상으로 한 경위(京位)에 비하여 외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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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 외위(外位)의 관등. 신라는 6세기 초에 이르러 국가통치체제를 강화하면서 지방세력가들을 지배체제 속에 포섭하기 위해서 그에 알맞은 관등을 주었는데, 이를 왕경인(王京人)을 대상으로 한 경위(京位)에 비하여 외위라고 불렀다.
내용

악간은 외위 중 첫번째로서 경위의 일길찬(一吉飡)에 상당하였는데, 삼국통일 무렵인 674년(문무왕 14)에 지방 출신에게도 일률적으로 경위를 주게 됨에 따라 자연히 폐지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문헌이나 금석문(金石文) 자료에 악간을 준 사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외위제(新羅外位制)의 성립과 그 기능」(권덕영, 『한국사연구』 50·51합집, 1985)
「新羅の外位と來投者への授位」(村上四男, 『朝鮮學報』 36, 1965 ; 朝鮮古代史硏究, 1978)
「三國史記職官志外位條の解釋」(三池賢一, 『駒澤大學硏究紀要』 5,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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