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6세기 초에 이르러 국가통치체제를 강화하면서 지방세력가들을 지배체제 속에 포섭하기 위해서 그에 알맞은 관등을 주었는데, 이를 왕경인(王京人)을 대상으로 한 경위(京位)에 비하여 외위라고 불렀다.
악간은 외위 중 첫번째로서 경위의 일길찬(一吉飡)에 상당하였는데, 삼국통일 무렵인 674년(문무왕 14)에 지방 출신에게도 일률적으로 경위를 주게 됨에 따라 자연히 폐지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문헌이나 금석문(金石文) 자료에 악간을 준 사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