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3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모두 청주 한씨(淸州韓氏) 가문의 민묘이며 피장자(被葬者)들의 신분을 밝혀주는 묘지(墓誌)가 발견되었다.
제1호분은 부부합장묘로 남편 한용기(韓鎔基)의 무덤은 회곽(灰槨)을 썼고 부인 숙인 영일 정씨(迎日鄭氏)의 무덤은 토광묘(土壙墓)이다.
제2호분은 숙인 청송 심씨(靑松沈氏)의 무덤으로 제3호분의 주인공인 청주 한공(淸州韓公)의 부인묘이다. 침향(枕向)이 동북향이며 아주 단단하고 정교하게 회곽을 다져 만들었기 때문에 횡대(橫帶)ㆍ목관(木棺)ㆍ인골(人骨) 등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제3호분은 정3품 당상관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청주 한공의 무덤으로 제2호분과 같이 견고한 회곽묘이며 목관 속에는 인골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고분들은 모두 청주 한씨 가문의 분묘로 무덤의 방향은 동북향이다. 고분의 위치가 횡으로 거의 비슷하게 놓여있는 점으로 보아 피장자들이 같은 항렬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의 축조방법은 먼저 적당한 크기의 토광(土壙)을 파고 회곽을 만든 다음 시신(屍身)을 안치한 목관을 묻은 뒤 횡대(橫帶)를 걸치고 다시 그 위에 회곽의 뚜껑을 얹어 다졌다. 목관과 횡대는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특히 횡대는 5ㆍ7ㆍ11개 등 홀수로 걸쳤다. 3기의 고분 중 제1호분의 부인 영일 정씨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매우 단단한 회곽묘이다.
3기의 고분 모두 묘지가 묻혀 있어 피장자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제2ㆍ3호분의 경우 인골이 완전하게 남아 있어 조선시대 사람들의 체질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