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는 청동기시대부터 제작되었던 것인데, 특히 안성유기는 예로부터 안성의 가죽꽃신과 더불어 ‘안성마춤’이라는 말이 유래될 만큼 유명하였다.
서유구(徐有榘)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구례·개성·정주 지방에서도 유기가 나지만 안성유기가 으뜸이라 하였고, 『안성약기(安城略記)』에서는 안성은 유기가 명산인데 그것은 견고하고 정교하여 전국에서 환영받았다고 하였다.
유기는 옛날에는 궁궐의 진상품이나 불상·종 등의 불교용품 또는 가정의 생활 용품으로 널리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스테인리스스틸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사양길에 들어섰다. 다만 안성유기는 전통 공예 미술품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현재 안성시 봉산의 유기장 기능보유자 김수영에 의하여 전통적인 유기 제작이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