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오달제와 조광조 관련 비각.
개설
역사적 변천
달제는 이충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1634년(인조 12)에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으로부터 부교리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인 윤집(尹集)·홍익한(洪翼漢)과 함께 끝까지 투쟁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굴욕적인 강화가 성립되었다. 이로 인하여 청국의 심양으로 끌려갔으나 지조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충절을 지켜 1637년에 처형되었다. 조정에서는 삼학사(三學士)라 칭하고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충렬공(忠烈公)이라 하였다.
조광조와 오달재 두 사람이 이충동에서 태어나 자랐으므로 이에 이들의 충절을 기려 제각을 지었다.
내용
진위유림이 나라에 허가를 받은 후, 1800년에 비(碑)를 세웠다.
비신(碑身)은 길이 123㎝·폭 55㎝·두께 16㎝로 전면 위쪽에 ‘송장(松莊)’이라는 글씨가 전서체로 장식되어 있다. 송장은 옛 지명인 진위현 송장면을 가리킨다. 전면 중앙에는 ‘정암조선생 충렬오학사 유허지비(靜菴趙先生 忠烈吳學士 遺墟之碑)’와 ‘숭정기원후 3경신(崇禎記元後 三庚申) 6월(六月)에 세웠다(立)’는 내용, 아래쪽에는 유허비를 세운 뜻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文化遺蹟分布地圖) : 평택시(平澤市)』(평택시, 200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