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 출신. 1917년 대한광복회에 가입, 활동하다가 이듬해 광복회의 간부가 모두 잡힌 뒤에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 9월(음) 경에는 그의 고향, 논산 집에서 대한광복회원 우이견(禹利見, 일명 禹在龍)·권영만(權寧萬)·소진형(蘇鎭亨)·이재환(李載煥) 등과 군자금모금을 계획하여, 군자금 모집 요구장 19통을 작성해서 논산군의 부호들에게 우송했으며 논산 부호인 김재엽 등으로부터 수령한 거액의 군자금을 임시정부특파원 김규일(金圭一)에게 전달하여 독립운동비로 제공하였다.
그 뒤 1920년 6월(음) 여준현(呂俊鉉)·심영택(沈永澤)·이규승(李奎承) 등과 함께 서울 경신학교에 모여 임시정부 지원단체인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하고 부사령장에 선임되었다. 주비단은 자금모집활동을 주로 하였는데, 그 모집방법은 상해임시정부 발행의 공채를 교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1920년 9월(음)경 이규승으로부터 공채 5,000원을 인수하여 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6년형을 언도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