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대군가

  • 문학
  • 작품
조선 후기에 최찬(崔纘)이 지은 시조.
이칭
  • 이칭억대군가, 운전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준규 (전남대학교, 국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고송최공실기 / 애대군가 미디어 정보

고송최공실기 / 애대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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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최찬(崔纘)이 지은 시조.

구성 및 형식

모두 2수로 ‘<억대군가(憶大君歌>’·‘<운전가(耘田歌>’라고도 불린다. 1863년에 간행된 『고송최공실기(孤松崔公實記)』에 4언6구로 된 한역가(漢譯歌)와 함께 실려 있다.

내용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의 무리가 득세하면서 영창대군(永昌大君)이 강화도에서 죽고,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서궁에 유폐당함을 보고 슬퍼하여 지은 것이다. 이 시조 때문에 최찬은 1618년(광해군 10) 의금부에 하옥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6년 만에 풀려났다.

작품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산의 시믄 ᄑᆞ시 씨는 어이 드므돗덧고/졈으도록 흣ᄆᆡ다가 홈의더러 니른 말리/플이야 셩타마ᄂᆞᆫ 너을 밋고 ᄆᆡ노라.”, “홈의 ᄃᆡ답호ᄃᆡ 쥬인님 내 말 듯소/ᄑᆞᆺ슬 시므거던 씨을 ᄇᆡ요 못ᄒᆞ실넌가/ᄲᅳᆯ히 깁고 수만ᄒᆞᆫ ᄯᅳᆯ을 낸들 어이ᄒᆞ리.” 김을 매는 농부와 호미와의 대화로 짝을 맞추어 노래하였는데, 전자는 왕자가 창성하지 못함을 슬퍼한 것이고, 후자는 소인의 무리가 크게 득세함을 한탄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왕자를 ‘팥’, 소인을 ‘풀’에 비유하였다. 사물을 의인화하여 연작으로 화법형(話法形) 구성을 취한 보기드문 표현양식을 지닌 작품이다.

참고문헌

  • - 『고송최공실기(孤松崔公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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