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용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집의, 사간, 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오재(梧齋)
  • 장경(長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제주(濟州)
  • 사망 연도1651년(효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예문관검열|예조좌랑군수|현감|수찬(修撰)·집의(執義)|사간|응교(應敎)
  • 출생 연도1598년(선조 3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덕 (고려대학교, 한학)
  • 최종수정 2025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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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집의, 사간, 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장경(長卿), 호는 오재(梧齋). 교리(校理)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주부윤 양응정(梁應鼎)이고, 아버지는 양산축(梁山軸)이다. 어머니는 장흥고씨(長興高氏)로, 예조좌랑 고종후(高從厚)의 딸이다. 강항(姜沆) · 박동열(朴東說)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장원하고, 이 해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 · 예문관검열 ·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36년 청나라가 침입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검열로 있을 때 직언으로 인하여 권신(權臣) 김자점(金自點)의 비위에 거슬려 승진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군수 · 현감 등 외직과 수찬(修撰) · 집의(執義) · 사간 · 응교(應敎) 등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거치면서 정치제도 개선에 많은 공을 세웠다.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저서로는 『오재집』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오재집(梧齋集)』

  • - 『계유증광사마방목(癸酉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3])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사마 급제 : 『계유증광사마방목(癸酉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3])

  • 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4

    : 양용만 저술 : 『오재집(梧齋集)』(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古3428-2-v.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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