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효릉참봉, 호조좌랑,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군실(君實)
  • 순수(順受), 임천(任天)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원(南原)
  • 사망 연도1650년(효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효릉참봉|호조좌랑|의령현감
  • 출생 연도1590년(선조 23)
  • 출생지함양(咸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수건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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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효릉참봉, 호조좌랑,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군실(君實), 호는 순수(順受)·임천(任天). 함양 출신. 양응곤(梁應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양희(梁喜)이고,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양홍주(梁弘澍)이다.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사민(李師閔)의 딸이다. 대북의 영수(領袖) 정인홍(鄭仁弘)의 처질(妻姪)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가 정인홍으로부터 배척당하자 서인편에 서게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에 연루되어 한때 도피하자, 어머니와 아내가 대신 구금되었다가 양원이 옥에 갇히자 석방되었다. 국문 끝에 변경에 유배되었다가 1619년에 풀려났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효릉참봉에 등용되었고, 곧이어 호조좌랑을 거쳐 의령현감을 지내다가, 암행어사에 의하여 파면되었다. 감사·병사 등이 양원의 무죄함을 신원하여 복직되었으나, 사직하고 그뒤 벼슬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명재유고(明齋遺稿)』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함양읍지(咸陽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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