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유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기선의 시 · 소 · 서독 · 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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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기선의 시 · 소 · 서독 · 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권두에 이경직(李庚稙)과 김택영(金澤榮)의 서문이 있다. 이 문집은 저자의 유학에 관한 저서인 『유학경위』와 함께 『신기선전집』으로 영인·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18권 9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285수, 권3·4에 소(疏) 63편, 권5·6에 응제문(應製文) 9편, 주의(奏議) 1편, 헌의록(獻議錄) 4편, 서독(書牘) 24편, 제문 9편, 문(文) 2편, 권7·8에 서(序) 58편, 권9·10에 기(記) 49편, 권11∼13에 제발(題跋) 16편, 잠(箴) 4편, 명(銘) 3편, 송(頌) 1편, 찬(贊) 4편, 설(說) 11편, 권14에 전(傳) 3편, 가훈(家訓) 18편, 권15에 문답(問答) 3편, 권16에 문목(問目) 3편, 초학지장(初學指掌) 2편, 권17에 휘언(彙言) 1편, 잡저 4편, 일기 2편, 권18에 부록으로 시장(諡狀) 1편, 가장(家狀) 2편, 칙명(勅命) 1편, 제문 6편 등이 수록되어 있고, 끝에 『유학경위(儒學經緯)』가 합록되어 있다.

시는 자연과 풍류를 즐긴 시가 많다. 그 가운데에는 학문에 대한 감상과 속세를 벗어나 벽곡(辟穀: 곡식은 안 먹고 솔잎·대추·밤 등을 조금씩 먹고사는 일)과 수련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소에는 대체로 사직소가 많다. 그 가운데 「언사소(言事疏)」 7편은 국내의 정치 사범의 논죄와 벌칙에 관한 상소문이다. 「변명소(辨明疏)」는 군부대신(軍部大臣)으로 재직할 때 군함 계약에 관련한 부정 혐의에 대해 변명한 내용이다.

초학지장 가운데 「성리원위(性理源委)」는 심성(心性)·이기(理氣)에 관해 논한 것이다. 이(理)는 물(物)의 소이연(所以然)인 동시에 소당연(所當然)의 법칙이고, 태극(太極)은 이(理)의 총회(總會)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는 기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기와 더불어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라고 하였다.

또한, 기의 정령(精靈)을 신(神)으로 보고, 천신(天神)·지기(地祈)·조물(造物)·주재(主宰)와 만물의 혼백(魂魄)·영각(靈覺)을 모두 기라고 보았다. 이러한 기를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상등을 신(神)으로, 하등을 형(形)으로, 중등을 기의 본부라고 하였다. 이 밖에 성(性)은 천리(天理)고 심(心)은 기(氣)의 정상(精爽)이므로, 심은 성을 포괄하며 성은 심에 실려 있다고 하였다. 또, 심(心)을 그릇으로, 물(物)을 성으로 비유해 성을 무위(無爲)로, 심을 유위(有爲)로 파악하였다.

일기 가운데 「병정일기(丙丁日記)」는 1886년(고종 23) 김옥균(金玉均)의 일파였다는 죄로 전라도 여도(呂島)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적소에서 한양으로 송치되었을 때 국정(鞫庭)에서 진술한 내용과 갑신정변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봉사일기(奉使日記)」는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로서 당시 영남·호남 지방 의병의 실상과 동태 파악, 접촉에 관해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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