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양이 목사가 제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당시는 해마다 제주에서 백마(白馬) 백 필을 진상하게 되어 있어, 이 진상으로 제주 백성들은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양이 목사는 이러한 실상을 상시관에게 진정한 뒤, 백마 백 필을 모아 배에 싣고는 손수 진상하러 사공을 이끌고 나섰다.
육지에 도착한 양이 목사는 그 백마를 진상하지 않고 다 팔고는 그 돈으로 물품을 산 뒤 제주도로 돌아와 되팔았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되풀이되어 오래도록 백마 진상이 없자, 조정에서는 사람을 보내 전후를 파악하고는 금부도사를 시켜 양이 목사를 잡아 오게 했다. 이를 미리 알아챈 양이 목사는 고동지 영감을 사공으로 삼아 빠른 배를 골라 타고는 도망을 쳤다.
도중에 바다에서 금부도사의 배와 마주쳤는데, 고 사공이 "양이 목사가 유람가는 배"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정체가 발각되고 말았다. 양이 목사는 진상할 말을 육지 백성에게 나눠 주고 제주에서 귀한 물품을 얻어다가 제주 백성들을 도운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호통을 치며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돛대에 몸이 묶여 한 칼에 목이 베이고야 말았다.
목이 끊기자 양이 목사의 몸통은 바다에 떨어지며 용이 되어 용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양이 목사의 머리는 죽지 않고 입을 벌려 고 사공에게 유언을 남겼다. "고의왕 양의왕 부의왕 세 성씨 가운데 탐라 양씨 자손이 대대로 굿을 할 때 내 원한을 풀어 주고 위해 달라."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제주에서 백마 백 필을 진상하는 제도가 폐지되어 백성들이 살기 편하게 되었고, 양이 목사의 유언대로 명월파 양씨 자손 집안에서는 양이 목사를 수호신으로 모셔 굿할 때마다 이 조상의 원한을 풀어 위하는 제차를 하게 되었다.
다른 조상 본풀이와 비교했을 때, 제주의 역사적 정황이 본풀이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공마(貢馬) 진상의 폐해, 지방관인 목사의 부정 등 제주가 겪은 역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탐라의 지배 세력이자 제주의 양대 호족 세력이었던 고씨와 양씨 간의 갈등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 본풀이는 원혼을 위로하여 집안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무속적 조상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중앙 권력의 지배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역사적 인식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역사 담론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 본풀이는 신앙에 기반하여 형성된 것이지만, 내용으로 볼 때 역사적 담론으로 기능하기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