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상대등 비담과 명활성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킨 관리.
내용
647년(선덕여왕 16) 1월에 상대등 비담(毗曇)과 함께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하고 왕을 폐위시키고자 하여 명활성(明活城)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켰다.
이에 월성에 주둔한 관군과 10여일 동안 공방전을 벌이며 잘 버티었으나, 결국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였다. 염종 등은 살해되고 또 9족(族)이 죽음을 당하였는데, 이에 연좌되어 살해된 자가 30명이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김유신가문(金庾信家門)의 성립(成立)과 활동(活動)」(신형식, 『이화사학연구(梨花史學硏究)』13·14합집, 1983)
- 「상대등고(上大等考)」(이기백, 『역사학보(歷史學報)』19, 1962 ; 『신라정치사회사연구(新羅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1974)
- 「新羅政治體制の變遷過程」(井上秀雄,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