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남부군은 6.25전쟁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 이현상이 지휘하던 좌익 빨치산 부대이다.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민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11월 강원도 후평리에서 이현상은 이승엽과 함께 남반부인민유격대를 창설하였다. 12월 충북 제천지구에서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단으로 부대를 개편한 후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남부군단 예하의 지리산 빨치산은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한국군과 유엔군에 큰 부담을 주었다. 이에 한국군은 군단급 ‘백야전전투사령부’ 창설하여 남부군을 토벌하였다.
정의
6.25전쟁 전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 이현상이 지휘하던 좌익 빨치산 부대.
개설
설립목적
이승엽 등과 남한지역의 당사업과 유격투쟁에 관한 문제를 토의했다. 이승엽은 6개 도당(충남북, 전남북, 경남북)에 대한 지도권한을 여운철에게 위임했고 이현상에게는 유격대의 통일적 지도를 맡겼다. 이현상은 후평리에 집결된 유격대로 남반부인민유격대를 조직하여 다시 지리산을 향했다. 이때 편성된 인민유격대는 유리사단(4백명), 혁명지대(60명), 인민여단(1백50명)과 사령부 및 기타 직속부대(1백50명) 등 약 8백 명의 병력이었다.
연원 및 변천
덕유산에 들어간 남부군단 총사령관 이현상은 여운철과 함께 1951년 7월 중순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의 6개 도당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후 남한일대의 유격투쟁은 이현상이 총지휘하게 되었다. 남부군단 예하에는 제1전구(전북의 북부지구와 충남)와 제2전구(전북의 남부지구)가 있었다. 제1전구에는 충남 빨치산 5백 70명을 68사단으로, 전북북부지방 빨치산 7백 명을 45사단으로 각각 개편했다. 제2전구는 전북 남부에 있는 각 유격대를 46사단, 53사단으로 개편했다. 직속부대로는 81사단, 92사단, 602사단이 있었다. 이들은 지리산에도 병기수리소를 설치하여 하루에 1천발의 탄환을 만들었으며 병원시설도 있을 만큼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1951년 7월부터 노동당은 남한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각 지대유격대 체제로부터 당 사업을 주로 하는 지구당 체제로 개편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기능과 역할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경찰사Ⅱ』(내무부치안국, 광명인쇄공사, 1973)
- 『한국경찰사Ⅱ』(내무부치안국, 광명인쇄공사, 1973)
- 『대비정규전사』(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8)
-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차길진, 기린원, 1990)
- 『한국전쟁과 유격전』(육군본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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