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 전면의 기둥은 매우 거대한 원주(圓柱)와 큰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다.
좌우로 방을 배치하고 중앙부분은 대청마루이다. 조선 전기에 창건되었으며, 명종 · 선조 때에 이충범(李忠範)이 여러 벗들과 이를 수축하여 강학하였다.
처음에는 풍곡당(豊谷堂)이라 칭하였으나, 1614년(광해군 6) 정구(鄭逑)가 이곳에 머무르며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강학함을 장려하였다는 뜻으로 자풍서당이라 개칭하였다.
1626년(인조 4) 이운길(李雲吉)이 중수하고 당헌(堂憲)을 정하였으며, 1664년(현종 5) 전명룡(全明龍), 1692년(숙종 18) 여안소(呂安素), 1720년 이필주(李弼周)가 각각 중수하여 강학처로 유지되어왔다.
최근에는 1964년에 중수한 바 있다. 이 서당에는 그 역사를 고증할 수 있는 고문적(古文籍)이 보관되어 있으며, 남수문(南秀文) · 이충범 · 김문기(金文起)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달필로 된 대필(大筆)의 ‘資風書堂’이라는 양각의 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