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 1989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초의 문신 김국광(金國光)과 겸광(謙光) 형제가 선영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시묘살이하던 곳에 1475년(성종 6)에 세운 건물이다.
처음에는 모두 26칸이었으나 수차 증개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875년(고종 12) 새로 개축한 것이다. 주변에는 석등으로 사용한 연화문양이 새겨진 석재가 남아 있어 불사건축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건물 뒤쪽의 바위에는 고려시대 마애불이 남아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세벌대 기단을 만들고, 규모가 큰 덤벙주초(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주춧돌)를 놓은 다음 기둥은 직경이 큰 원주를 썼다. 기둥 중 굵은 것은 직경이 35cm나 되는 것도 있다. 평면은 동측 1칸통을 부엌으로 하고, 서측은 크기가 다른 2개의 온돌방을 두었다.
즉 가운데 2칸통은 큰 온돌방으로 하고, 서측 1칸통은 작은 온돌방을 두었다. 온돌방 전면은 퇴칸을 만들어 툇마루를 설치했는데, 서측 툇마루의 높이를 가운데 툇마루보다 높게 만들어 단의 차를 두었다. 서측 온돌방 밖으로 낮은 굴뚝을 설치해두었다.
온돌방의 정면 창호는 띠살문 분합문으로 달고, 부엌에는 넓은 판재를 붙여 만든 장판 분합문을 달았다. 부엌의 장판문 하부에 끼운 하인방은 아래로 휘어진 부재를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멋을 나타내게 하였다.
전체적으로 건물 부재가 견실하면서도 기와에 막새를 달지않고 단청도 하지 않아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