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항일시인이자 계몽문학의 선구자인 심훈(1901∼1936) 선생이 1934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으로, 당호는 ‘필경사(筆耕舍)’이다. 심훈 선생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는 바로 이곳에서 집필한 작품이다.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지고 북동쪽으로 서해 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주변에 몇 채의 민가와 함께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대문이나 부속채 없이 ‘ㅡ자형 단독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앞쪽에는 최근 상록수문화관을 건립해 두었다. 필경사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어서 외관으로 보면 전통적인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으나 내부 평면은 1930년대 도시주택의 기능에 맞추어 생활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전면을 바라보고 우측에서 2번째 칸을 현관으로 하고 현관을 들어서면 우측에 전후 2칸을 터서 큰 방을 만들고 이 방을 집필실로 사용하였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좌측으로는 횡으로 2칸 반을 터서 마루방을 두었다. 마루방 뒤편 한쪽은 안방이고 다른 한쪽은 현관 뒤쪽 한 칸과 합쳐 부엌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2칸의 부엌 중 한 칸은 상부에 다락을 두고 안방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택의 서측에는 앞뒤로 길게 반칸을 나누어 두 개의 화장실과 하나의 욕실을 배치하였는데 전면의 화장실은 외부에서 사용하도록 하고, 내부의 화장실과 욕실은 안방을 통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욕실에는 커다란 가마솥을 걸로 밑에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주택 내부에 화장실과 욕실을 둔 평면구조는 일본식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화강석을 대충 다듬은 사괴석과 자연석을 혼용하여 한 단 높이로 기단을 만들고 초석 역시 사괴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방형 기둥을 쓰고 기둥머리는 보와 도리를 기둥에 ‘+’자로 끼우는 사개맞춤으로 짜올렸다.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우진각 지붕이어서 서까래는 부채살 모양의 선자서까래로 배열하였다. 다만 모서리의 추녀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가 있다.
전면과 측면에는 유리창을 달아 전통적인 세살창을 단 것보다 내부를 밝게 처리하였다. 밖에서 안으로 통하는 문을 각 방면에 두고 있는데 현관을 비롯하여 부엌, 안방, 그리고 사랑방에 각각 문을 두었다.
이 주택은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설계는 당시 도시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면형태 중에서 화장실과 욕실을 실내에 설치해 두는 형식을 채용하고 있다. 또한 유리창을 달아 내부를 밝게 처리함으로써 전통주거의 실내와는 다르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마루방과 사랑방 외부에 작은 베란다를 설치하여 화분을 놓도록 배려한 것은 설계자의 섬세한 마음을 엿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모습은 농촌마을 경관에 어울리게 한국의 전통적인 외관을 유지하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