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강구를 서쪽으로 바라보는 높이 30m 정도 구릉의 동쪽 경사면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후기의 취락지가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1960년 김원룡의 지표조사에 의하여 타제납작네모도끼[打製扁平四稜斧] 1점, 홈자귀[有溝石斧] 파편 2점, 돌끌 1점, 마제유병(磨製有柄)돌살촉 2점, 삼각형석도 파편 5점과 민무늬토기·김해토기 파편 등이 채집되었다. 네모도끼는 사질혈암(砂質頁岩)으로 만들었는데, 길이 22.2㎝이며 날 쪽만 약간 갈았을 뿐이다.
홈자귀는 두개 모두 혈암제이고 단면은 장방형인데, 등 쪽보다 홈이 있는 배 쪽의 너비가 좁은 것이 특이하다. 돌살촉은 점판암제로 완전한 것은 길이 5.3㎝의 나뭇잎형이다. 삼각형석도는 완전한 것 한개와 파편 네개인데 재료는 점판암·규장암·섬록암·응회암·사암이며, 완형은 등길이 10.15㎝, 두께 0.4㎝의 이등변삼각형에 구멍이 두개 뚫려 있다.
날은 한쪽만을 간 외날[單刃]이며 서로 반대쪽에 붙어 있다. 민무늬토기는 석립이 섞인 태토의 납작바닥[平底]이고, 김해토기는 문살무늬[格文]와 삿무늬[繩蓆文]의 전형적 형식인데 이들 토기와 석기의 공존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이 유적은 유물산포지이지만 김해토기를 제외한 나머지 유물들은 공존유물(共存遺物)이라고 판단된다. 영산강 유역의 민무늬토기 후기 문화내용의 한 자료로, 또 삼각형석도의 호남지방발생설을 뒷받침하는 중요자료로서 의의가 있고, 이 지방에 드문 김해토기 산포지의 하나로서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