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발해시대의 중요 대외교통로.
내용
이 교통로는 당나라의 장안(長安)으로 직통하는 육로교통의 간선도로였으나, 거란(契丹)·돌궐(突厥) 및 안사(安史)의 난으로 여러 차례 차단됨으로써 발해와 당나라와의 사신교환에는 점차 압록부(鴨淥府)의 조공도(朝貢道)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경로는 『신당서』 지리지에 인용된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상경에서 출발하여 첫 도읍지였던 돈화(敦化)를 지나 장령부(현재의 길림성 해룡현 산성진) 관내를 통과한 다음 심양(瀋陽)·흑산(黑山)·북진(北鎭)·의현(義縣 : 당시의 燕郡城)을 거쳐 영주에 이른다.
영주는 현재의 요령성 조양(遼寧省朝陽)으로, 당시에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를 두어 당나라의 동방경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다시 고북구(古北口)를 지나 당나라의 장안에 이르게 된다.
이 교통로를 이용한 구체적인 사례로서는, 732년에 발해가 당나라의 등주(登州)를 공격하자 당나라측이 대문예(大門藝)를 유주(幽州)에 보내어 발해를 치도록 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신당서(新唐書)』
- 『渤海簡史』(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