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함(重涵), 호는 난와(難窩). 아버지는 오갑선(吳甲善)이며,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로 정시혁(鄭時爀)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처음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 일본인들에 의하여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이를 토평하기 위하여 기우만(奇宇萬)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그에 가담하였다.
경술국치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두문불출하던 중 은사금(恩賜金)을 거절한 일로 장성 헌병부대에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영사재(永思齋)에 들어가 오직 독서만으로 생애를 보냈다.
오계수는 이기론(理氣論)에 있어 이(理)는 본성(本性)이고, 기(氣)는 기형(器形)으로, 둘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표리와 같이 불리부잡(不離不雜)한 하나라는 일물론(一物論)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난와유고(難窩遺稿)』 17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