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여(重汝),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오덕형(吳德亨)이며, 어머니는 언양김씨(彦陽金氏)로 김태정(金台鼎)의 딸이다. 이수항(李壽沆)에게 수학하였다.
1717년(숙종 43)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3년(경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가주서가 되었다. 1729년(영조 5) 분순부위(奮順副尉) 용양위부사정(龍驤衛副司正), 이듬 해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예조의 좌랑·정랑에 이어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승진하여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뒤에 영암군수로 나갔다가 흉년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고을 백성들을 구휼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735년 세선(稅船)의 잘못으로 파직되어 환가하였다.
1738년 다시 성균관사에, 1744년 어모장군행용양위부사과문신 겸 선전관(禦侮將軍行龍驤衛副司果文臣兼宣傳官)에 이어 어모장군행의흥위부사과(禦侮將軍行義興衛副司果)에 배수되었다.
다음 해 양산군수로 나갔다가, 이듬 해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며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지냈다. 저서로는 『만오공문집(晩悟公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