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부(慶夫), 호는 한계(寒溪).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오익전(吳益烇),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 선무랑(宣務郞) 송익(宋翊)의 딸이다. 30세 되는 해에는 부친, 그 이듬해에는 모친의 상을 차례로 당하였는데 효행이 지극하였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형편이 어려운 조카와 종제를 기르고 교육시켰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인간교육을 우선으로 가르치니 많은 학생이 찾아들었다. 오선기의 책상 위에는 항시 성리서(性理書),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이 놓여 있었고 필법(筆法)도 훌륭하였으며, 「근독잠(謹獨箴)」을 지어 좌우에 걸어두고 깨우침을 삼았다.
오선기는 변론하는 학자이기 보다는 실천하는 철인형이었다. 매림서원(梅林書院)·남계사(南溪祠) 등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소학석의(小學釋義)』·『한계문집(寒溪文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