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강릉시 남쪽을 횡단하여 흐르는 남대천(南大川)변에 솟아 있는 남산의 정상에 자리잡은 정자로서 이곳에 오르면 강릉시와 남대천 하구의 해안이 한눈에 보인다.
1627년(인조 5)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정자의 현건물은 1927년에 최명익(崔命翼) 등 20명의 을묘생(乙卯生) 동갑들이 세운 것으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T자형 와가이다.
강릉객사(江陵客舍)의 재목을 옮겨 지었으므로 건물이 우람하고 고풍(古風)이 넘친다. 이 정자는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직후 부수찬(副修撰)으로서 전국의 유생들을 이끌고 율곡(栗谷)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상소했던 송광연(宋光淵)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는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파쟁(派爭)의 여파로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되었으며, 부임을 거부하자 파직을 당했다.
그는 이곳에 은거하며남산 밑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조석으로 이 정자에 올라 주위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정자에 걸려 있는 현판은 구한말에 법부 · 내부 · 탁지부(度支部) 등의 대신을 지냈던 윤용구(尹用求)의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