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명수(冥受), 호는 금남(錦南). 증조는 오방식(吳邦植)이고, 할아버지는 오상덕(吳尙德)이며, 아버지는 오치인(吳致仁)이다.
1457년(세조 3) 별시문과에 장원하였다. 좌정언(左正言)을 거쳐 1467년 함길도관찰사로 있을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왜구가 해안지방에 쳐들어온다며 연안의 백성들을 산으로 피난시키는 등 민심을 어지럽혔다. 난이 끝난 뒤 민심을 어지럽힌 죄로 임실에 유배되었다가 예종 때 다시 서용되어 한성부좌윤·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