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부여출신이었으나, 고구려 시조 주몽(동명왕)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부여를 탈출할 때부터 마리(摩離)·협보(陜父)와 함께 동명왕을 수행하였다. 서기전 32년(동명왕 6)에는 부분노(扶芬奴)와 더불어 태백산 동남쪽에 위치한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였다.
14년(유리왕 33)에는 마리와 함께 2만의 군대를 이끌고 양맥국(梁貊國)을 정복하고 나아가서 중국의 현도군(玄菟郡)의 중심부인 고구려현을 공격하는 등, 고구려 건국 초기에 많은 공적을 세웠다.
동명왕이 부여를 탈출할 때 수행한 인물을 『위서(魏書)』 고구려전에서는 ‘오인(烏引)·오위(烏違)’라고 하였으며, 중종 임신간본(中宗壬申刊本)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조이(鳥伊)’라는 표기도 보이는데, 이는 오이의 간오(刊誤)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