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김일성(金日成)이 평안북도 창성군 약수리 ‘민주선전실’을 방문하였을 때 “유급간부 한 사람이 5호씩만 책임지고 사상교양사업과 경제사업 등 일체 생활을 지도하도록 하고 이당위원회(里黨委員會)에서 그 집행을 감독하도록 하라.”고 지시한 뒤, 그 이듬해인 1959년부터 북한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의 조세 징수를 위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본뜬 것으로, 조세징수 때 5호가 연대책임을 지는 작통법과는 달리 5호담당선전원에 의한 주민 감시·통제와 세뇌교육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오가작통법과 다른 점이다.
5호담당선전원은 각급학교 교원이나 열성당원 가운데 우수한 자가 임명되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상급 당기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