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본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조헌(趙憲)이 옥천의 각신촌(覺新村)에 서당을 지어 은거하던 가운데 나날이 발길을 머물러 유상하던 자취를 추모하여 세웠던 바로서, 조헌의 사후 80여년이 지난 1673년(현종 14)에 군수 김만균(金萬均)과 마을의 선비 금유(琴愉) · 금성(琴惺) · 조징(趙澄) 등이 처음 세워서 강학(講學) · 모현(慕賢)의 장소로 삼았던 곳이다.
이지당의 ‘二止’는 《시경(詩經) · 소아(小雅)》 「거할(車舝)」 편의 “高山仰止, 景行行止”(높은 산을 우러르고, 큰 길을 다닌다.)라는 시구에 그 유래가 있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욱 직접적으로는 조헌이 어려서부터 학문의 강요(綱要)로 삼아 나날이 암송하며 실천했다는 《대학(大學)》 전3장(傳三章)의 “爲人子止於孝, 爲人臣止於敬.”(자식이 되어서는 효도에 그치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그친다.)라는 구절에 나오는 두 가지 요목의 ‘止’를 인용한 것이다.
1901년(광무 5) 옥천 옥각리(玉覺里) 금씨(琴氏) · 이씨(李氏) · 조씨(趙氏) · 안씨(安氏)의 네 문중에서 이 건물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채 1동과 누각건물 1동으로 되어 있지만, 건물이 연접해 있어서 마치 하나의 건물과 같게 느껴진다. 본채는 석축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1칸의 평면을 하고 있다.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서쪽으로 2칸의 방을 놓았으며, 동쪽으로 1칸의 방을 놓았다. 본채의 가장 오른쪽 1칸은 정면으로 1칸을 덧붙여서 2칸의 누각을 만들었다. 이지당은 본채의 양쪽에 돌출한 누각을 두어 눈앞의 절경을 완상(玩賞)하도록 배려한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현재 이 건물에는 송시열의 친필인 이지당의 편액이 걸려 있고, 대청에는 조헌의 친필인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는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二止堂記) · 이지당강학조약(二止堂講學條約) · 조헌의 친필운(親筆韻) 등이 남아 있다. 1966년 12월 정각(亭閣)을 보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