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경상좌도수군절도사, 상호군, 도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0년(세조 6) 안변부사로 있으면서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모련위(毛憐衛)의 야인(野人) 토벌에 공을 세웠다. 1463년 당상관으로 의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 1466년 기복(起復: 喪을 끝마치고 다시 벼슬 길에 오름)되어 의주목사가 되었으나, 적정(賊情) 정탐을 이유로 압록강을 건너 대창산(大昌山) 밑에서 사냥하다가 야인의 습격을 받아 패배한 일로 파직, 투옥되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옥에서 나와 입공속죄(立功贖罪: 죄값을 만회하기 위해 공을 세움)의 기회를 얻고, 화차장(火車將)으로 임명되어 평정에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단성군(丹城君)에 봉하여졌으며 겸오위장(兼五衛將)이 되었다.
그 뒤 강순(康純)·남이(南怡) 등이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할 때 종군하여 공을 세워 군공(軍功) 3등에 책록되었고, 이어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470년 상호군 겸 도총관으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는 성종의 즉위에 대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었으며 다시 단성군에 봉하여졌다. 우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장(襄莊)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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