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한 명의 창자(唱者)가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엮어 발림을 곁들이며 구연하는 전통 공연 예술이다. 판소리의 등장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문헌 자료에 근거하여 조선 후기 숙종 및 영조조 무렵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서민들 사이에서 향유되던 판소리는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하며, 전문 소리꾼들의 등장에 따라 음악적인 면에서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였고, 향유층이 확대되면서 사설과 음악 면에서 양반층의 요구가 더하여져 더욱 세련된 형태를 띠며 완성되었다.
판소리는 청중이 모인 판에서 한 명의 창자(唱者)가 북 반주를 수행하는 고수(鼓手)의 장단에 맞추어 이야기를 엮어내는 공연 예술로, ‘판’과 ‘소리’가 결합된 말이다. ‘소리’는 우리 민속 성악을 두루 이르는 말이고, ‘판’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여러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씨름판’, ‘놀이판’과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특정한 놀이나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도 하고, ‘판염불‘, ‘판놀음’, ‘판굿’과 같이 전문인의 예능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도 하며, ‘바둑 한판’과 같이 서사적 구조의 완결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판소리에서 ’판’이라는 의미는 이러한 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전문인의 예능으로, 이야기는 서사적 구조의 완결이며, 청중이 모인 너른 공간에서 연행(演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20세기 전반까지도 타령(打令) · 잡가(雜歌) · 극가(劇歌) · 창가(倡歌)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판소리’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판소리는 현재 전승되는 다섯 바탕 외에도 18~19세기 인물인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에는 「춘향가」 · 「심청가」 · 「흥보가」 · 「수궁가」 · 「적벽가」 ·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 · 「배비장타령」 · 「장끼타령」 · 「옹고집타령」 · 「강릉매화타령」 · 「왈자타령」 · 「가짜신선타령」의 열두 바탕이 기록되어 있고, 1940년에 출판된 정노식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는 『관우희』의 열두 바탕과 비교하여 「왈자타령」을 「무숙이타령(武叔이打令)」이라 하였고 「가짜신선타령」 대신 「숙영낭자전」을 포함시키고 있다. 즉, 조선 후기에는 오늘날과 비교하여 더 많은 바탕의 판소리가 존재하였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을 거치며 나머지 판소리의 전승이 끊어지고 현재 전해지는 다섯 바탕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만 전한다.
「춘향가」는 남원 퇴기(退妓)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노래이다. 단오날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몽룡 부친의 근무지 이동으로 인하여 두 남녀가 이별하게 되고, 남원고을에 새로 부임한 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들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옥고를 치른다. 한양에 올라간 몽룡은 과거에 급제하고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돌아와 부패한 사또를 몰아내고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는 이야기로, 춘향의 정절을 주제로 한다. 춘향가 중 유명한 눈대목으로는 ‘적성가’, ‘천자뒤풀이’, ‘사랑가’, ‘이별가’, ‘신연맞이’, ‘십장가’, ‘옥중가’, ‘어사와 장모’, ‘어사출도’ 등이 있다.
「심청가」는 효녀 심청이 눈 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의 제사의 제물로 몸을 던졌다가 용왕의 도움으로 환생하여 황후가 되고, 다시 아버지와 재회하여 결국 부친의 눈을 뜨게 하는 내용으로, 효를 주제로 한다. 심청가 중 유명한 눈대목으로는 ‘중타령’, ‘범피중류’, ‘심청 인당수 빠지는 대목’, ‘추월만정’ 등이 있다
「흥보가」는 흥보와 놀보 두 형제의 이야기로,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는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고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심어 보물을 받아 부자가 되고, 악한 성품의 형 놀보는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제비에게서 받은 박씨를 심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권선징악 및 형제간의 우애를 주제로 한다. 흥보가 중 유명한 눈대목으로는 ‘놀보심술’, ‘가난타령’, ‘제비노정기’, ‘흥보박타령’, ‘화초장’,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데’ 등이 있다.
「수궁가」는 용왕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토끼의 간을 찾으러 세상에 나간 별주부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돌아오고, 죽을 위기를 맞이한 토끼가 지혜로써 그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으로, 토끼의 ‘지혜’와 자라의 ‘충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수궁가 중 유명한 눈대목으로는 ‘약성가’, ‘토끼화상’, ‘고고천변’, ‘범 내려온다’, ‘가자 어서가’ 등이 있다.
「적벽가」는 중국의 위, 한, 오 삼국 시대에 조조와 유비, 손권이 싸우는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내용 가운데 적벽대전 부분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로, 장수들의 용맹함을 주제로 한다. 적벽가 중 유명한 눈대목으로는 ‘삼고초려’, ‘군사설움타령’, ‘자룡 활 쏘는데’, ‘적벽강 싸움’, ‘새타령’ 등이 있다.
성악곡은 장르에 따라 노랫말 전달이 큰 의미를 갖기도 하고, 노랫말보다는 음악적 표현에 좀 더 집중하기도 한다. 판소리는 서사적 구조를 가진 긴 이야기를 소리로써 풀어내는 성악 장르로 사설 전달이 최우선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소리에서 사설과 음악의 결합은 매우 긴밀하여 사설의 내용에 따라 악조와 장단 등을 배치하는데, 판소리에서 사설과 음악이 적절히 결합하였을 때 이를 ‘이면에 맞는다’라고 한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악조(樂調)는 계면조 · 우조 · 평조의 세 악조를 기본으로 하며, 그 외에 경드름 · 설렁제 · 추천목 등 여러 조가 사용된다. 판소리에서 어떤 대목에 어떤 악조를 사용할 것인지는 사설의 극적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결정된다.
(1) 계면조 판소리 계면조는 전라도 · 충청도 · 경기도 남부의 살풀이 무가(巫歌) 또는 이 지역 민요에서 주로 사용되는 육자배기토리를 토대로 발전시킨 것이다. 악조명인 계면조는 가곡(歌曲)에서 차용한 것이나 가곡의 계면조와는 다르다. 슬픈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서름제 또는 애원성(哀怨聲)이라고도 부르며, 사설의 극적 정황이 슬프고 여성적인 장면에 흔히 쓰인다. 구성음은 ‘미, 솔, 라, 도, 레’의 다섯 음이며, ‘미’ 음은 깊게 떨고, ‘라’ 음이 선율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청(주음)’으로 기능하며, ‘도’는 빠르고 격하게 꺾어내려 마치 ‘시’음에 ‘도’가 장식음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시김새 사용이 적극적이며 표현이 강화되어 계면조의 느낌이 매우 짙은 경우에는 진계면, 시김새가 약화되고 계면조의 느낌이 덜하면 평계면 또는 단계면과 같이 구분하기도 한다. 판소리에서 대표적인 계면조 대목은 「춘향가」 중 ‘이별가’와 ‘옥중가’,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 ‘추월만정’, 「흥보가」 중 ‘가난타령’, 「적벽가」 중 ‘고당상(高堂上)’ 과 같은 대목을 들 수 있다.
(2) 우조 판소리에서 우조는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기해단전(氣海丹田) 즉 배 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니 담담연(淡淡然) 온화하고도 웅건청원(雄建淸遠)한 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악조명인 ‘우조’ 역시 가곡에서 차용한 것으로, 판소리 우조를 가곡과 같은 정악풍의 느낌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조는 그 분위기와 선율 특징에 따라 진우조, 평우조, 가곡성우조로 세분하기도 하는데, 진우조는 호기로우며 위엄 있는 성음을 위주로 하여 우조의 느낌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인다. 판소리에서 대표적인 우조 대목은 「춘향가」 중 ‘신연맞이’, 「심청가」 중 ‘범피중류’, 「적벽가」 중 ‘삼고초려(三顧草廬)’와 같은 대목을 들 수 있다.
(3) 평조 판소리에서 평조는 우조와 유사하나 그보다 화평하고 담담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설의 극적 정서가 화창하고 즐거운 대목에 흔히 쓰인다. 평조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기산영수’, 심청가 중 ‘화초타령’, 「적벽가」 중 ‘장승타령’ 과 같은 대목을 들 수 있다.
판소리 우조와 평조의 구체적인 음 구성과 선율 특징에 대해서는 학계에 이견이 존재한다. 판소리 우조의 구성음을 ‘솔, 라, 도, 레, 미’의 5음, 평조를 ‘레, 미, 솔, 라, 도’의 5음으로 보아, 제4음과 제5음의 음정 간격의 차이로 우조와 평조를 구분하기도 하고, 판소리 우조는 ‘라, 도, 레, 미, 솔’의 5음으로 구성되며 ‘라, 레, 미’ 3음이 주요 골격을 이루고, 평조는 ‘솔, 라, 도, 레, 미(파)’의 5음으로 구성되어 ‘솔, 도, 레’ 3음이 주요 골격을 이루며 ‘솔’ 음을 주로 요성(搖聲)하고 ‘레’ 음을 퇴성(退聲)하는 시김새가 빈번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학계에서 여전히 이러한 이견이 존재하는 이유는 판소리 우조와 평조가 서로 섞여 사용되기 때문인데, 진양과 중모리 대목에서는 특히 우조와 평조의 특징이 한 곡 안에서도 함께 등장하여 우조와 평조를 넘나든다.
(4) 경드름 경드름은 「창부타령」 · 「도라지타령」과 같은 서울, 경기 지역 민요의 음악 어법인 경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으로, 경드름을 판소리에 처음 도입한 이는 19세기의 소리꾼인 염계달(廉季達)로 알려져 있다. 경토리와 마찬가지로 ‘솔, 라, 도, 레, 미’의 5음으로 구성되며, 경쾌하고 서울토리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판소리 사설의 극적 정황이 서울 사람이나 한량(閑良)들이 나오는 대목에 흔히 쓰인다. 경드름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남원골 한량’, ‘이도령 춘향 달래는 대목’을 들 수 있다.
(5) 설렁제 설렁제는 권마성(勸馬聲) 가락을 판소리화시킨 것으로, 덜렁제 · 드렁조 · 권마성제라고도 한다. 높은 고음역에서 길게 지속하는 선율과 도약적인 선율이 많아서 경쾌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설의 극적 상황이 무사적(武士的)인 인물이 거드럭거리면서 호기 있게 나오거나 떠드는 대목에 흔히 쓰이고, 중중모리장단과 결합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설렁제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군노사령(軍奴使令)’, 「심청가」 중 ‘남경선인(南京船人)’, 「흥보가」 중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을 들 수 있다.
(6) 추천목 추천목은 순조 때 명창 염계달이 낸 소리제로 「오봉산타령」, 「한강수타령」과 같은 서울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이며, 마치 그네가 오락가락 하는 것처럼 흔들거리고 흥청거리는 가락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추천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음악에서 표현하는 극적 분위기가 가뿐하고 흥겨운 느낌이므로 주로 중중모리장단과 결합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추천목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네 그른 내력’, 「수궁가」 중 ‘토끼 춤추는 대목’이 있으며, 고수관(高壽寬)의 더늠인 「춘향가」 중 ‘자진 사랑가’도 추천목으로 선율을 구사하였는데, 오늘날 「자진사랑가」는 계면조를 사용하거나, 계면조와 경드름을 번갈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강산제, 석화제, 메나리조 등이 사용된다. 강산제는 순조 때 명창 모흥갑(牟興甲)이 낸 소리제로 「춘향가」 중 ‘이별가’, ‘날 다려가오’ 대목에서 보이며, 석화제는 가야금 병창제와 비슷한 소리제로 순조 때 명창 김제철(金齊哲) · 신만엽(申萬葉)이 낸 소리제로 알려져 있고 「수궁가」 중 ‘토끼 고향에 돌아오는 대목’에서 볼 수 있다. 메나리조는 「강원도아리랑」 · 「쾌지나칭칭나네」와 같은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 민요에서 사용되는 메나리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으로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데, 「심청가」에서 심봉사와 뺑덕어미가 황성길 올라가는 길에 뺑덕어미가 길소리를 ‘경상도 메나리조’와 ‘전라도 밭메기소리’를 반씩 섞어 메긴다는 표현이 나온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에는 진양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 · 엇모리 · 엇중모리가 있다.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의 네 장단이 중심이며, 휘모리와 엇모리, 엇중모리는 특정 대목에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판소리는 사설의 극적 상황에 따라 음악을 구성하는 장르로, 장단 역시 사설의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된다.
(1) 진양 진양장단은 3소박 6박자 장단으로,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 중 가장 느린 템포의 장단이다. 소리의 맺고 푸는 데에 따라 3∼5장단 단위를 주기(週期)로 북 가락의 변주가 일어난다. 북가락의 변이가 대개 4장단 단위로 이루어져 진양 4장단을 하나의 장단으로 해석하여 진양을 24박이라고도 하였으나, 반드시 4장단 주기로 선율 단락을 이루는 것은 아니므로 진양장단은 6박 한 장단이며 대체로 4장단 주기로 선율 단락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약간 빠른 템포로 부르는 자진진양을 판소리에서는 ‘세마치’라 부르기도 한다.
판소리에서 진양장단은 사설의 극적 상황이 한가하고 이완(弛緩)되어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진양장단을 사용하는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적성가(赤城歌)’와 ‘긴 사랑가’, 「심청가」 중 ‘범피중류’, ‘추월만정(秋月滿庭)’ 등이 있다.
(2) 중모리 중모리장단은 보통 빠르기의 2소박 12박자 장단으로, 한배에 따라 약간 느린 느진중모리, 조금 빠른 자진중모리로 부를 수 있으며, 자진중모리는 단중모리라고 이르기도 한다.
중모리장단은 보통 빠르기의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이거나 이야기 전개를 서술하는 대목, 또는 느린 템포로 차분히 나열하는 장면에 많이 쓰인다. 한편, 느린 템포로 부르면 슬픈 느낌의 대목에도 쓰이고, 빠른 템포의 자진중모리는 중중모리와 유사한 극적 분위기를 갖는다. 중모리장단을 사용하는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쑥대머리’와 ‘옥중상봉’, 「흥보가」 중 ‘가난타령’, 「심청가」 중 ‘선인(船人) 따라가는 대목’ 등이 있다.
(3) 중중모리 중중모리장단은 3소박 4박자 장단으로,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 중 가장 기본 패턴과 빠르기의 장단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의 기원이되는 장르를 소리 광대들의 타령류의 소리로 본다면, 아마도 중중모리장단과 같은 3소박 4박자류의 장단이 판소리에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 것이다. 중중모리는 한배에 따라 느진중중모리, 자진중중모리 장단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느진중중모리는 일상적인 가장 평범한 대목에 사용되며, 거뜬거뜬한 빠르기의 중중모리는 흥겹게 춤추는 대목이거나 호기롭게 외치는 대목 등에 사용된다. 중중모리장단을 사용하는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천자(千字)풀이’와 ‘자진사랑가’, 「심청가」 중 ‘화초타령’,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路程記)’, 「수궁가」 중 ‘토끼화상’, 「적벽가」 중 ‘장승타령’ 등이 있다.
(4) 자진모리 자진모리장단은 조금 빠른 템포의 3소박 4박자로, 빠르기에 따라 조금 느리게 치는 느진자진모리와 조금 더 빠른 자진자진모리로 연주할 수 있다. 자진모리는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어떤 일을 빠르게 서술하거나 나열하는 대목 또는 극적이고 긴박한 대목에서 흔히 쓰인다. 자진모리장단을 사용하는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 중 ‘신연(新延)맞이’와 ‘어사출도’, 「심청가」 중 ‘인당수 바람부는데’, 「적벽가」 중 ‘자룡(子龍) 활 쏘는데’와 ‘적벽화전(赤壁火戰)’ 등이 있다.
(5) 휘모리 휘모리장단은 2소박 매우 빠른 4박자로, 판소리에서는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매우 빠른 장단이므로 극적 상황이 분주하게 벌어지는 대목에서 사용되는데, 휘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심청가」 중 ‘심청이 물에 빠지는데’, 「흥보가」 중 ‘돈과 쌀 퍼나르는 대목’ 등이 있다.
(6) 엇모리 엇모리장단은 3소박과 2소박의 혼합박자로, 3+2+3+2의 박자 구조를 갖는 3·2 혼소박 4박자이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여타의 장단과 다르게 기본박의 길이가 불규칙적이고, 때문에 일상이 이난 비범한 대목에 주로 사용된다. 즉,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거나 신비로운 장면에 쓰이는데, 엇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심청가」 중 ‘중타령’, ‘수궁풍류’, 「흥보가」 중 ‘중타령’, 「수궁가」 중 ‘범 내려오는 대목’ 등이 있다.
(7) 엇중모리 엇중모리장단은 보통 빠르기의 2소박 6박자로, 중모리장단의 절반에 해당한다. 엇중모리장단은 판소리에서 가장 마지막 대목인 ‘후일담’ 대목에 주로 사용되며, 그 외에 「춘향가」 중 ‘회동성참판’ 대목도 엇중모리장단으로 부른다.
판소리는 사설 전달이 매우 중요한 성악 장르로, 주로 한 음에 사설 한 글자를 놓아 부르고, 리듬의 변화도 사설 전달이 용이한 상태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꾀한다. 이 때문에 장단이라는 틀 안에 사설을 놓아 가는 형태인 붙임새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판소리 붙임새 중 장단의 기본 구조와 강박을 중심으로 사설을 배치하는 가장 기본적임 붙임새를 ‘대마디대장단’이라고 하는데, 대마디대장단은 사설 주기와 장단 주기가 일치하고 매 박의 주박에 사설이 놓이는 형태이다. 대마디대장단과 가장 반대되는 형태는 ‘엇붙임’으로, ‘엇붙임’은 사설 주기와 장단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붙임새, 즉 장단의 중간에서 사설이 시작되어 다음 장단의 중간에서 사설이 끝나는 경우를 이른다. 그 외에도 주박을 빗기어 사설을 놓아 가는 형태로서 3소박 장단에서 2소박으로 말을 붙이는 ‘완자걸이’, 사설을 장단의 앞과 뒤로 몰아붙여 가운데 공간을 훌쩍 뛰는 ‘교대죽’, 주박의 위치에서 아주 짧은 시가로 쉬고 들어가는 ‘잉어걸이’, 한 장단에 사설을 촘촘하게 붙이는 ‘주서붙임’, 고수의 북가락은 장단을 계속 짚어 가되 소리꾼은 박자 구조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듯 소리하는 ‘도섭’ 등이 있다.
판소리에 관한 가장 오랜 문헌은 조선 영조 30년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으로, 1753년(영조 29) 호남 지방을 유람하며 직접 듣고 본 판소리 「춘향가」를 200수의 한시로 기록하고 있다. 이 문헌을 근거로 판소리의 연원을 영조조 무렵까지 소급하는데, 정확하게 판소리가 어느 시기에 어떠한 장르로부터 기원하여 등장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 설화기원설, 문장체소설선행설, 서사무가기원설, 창우집단(倡優集團)의 광대소리 기원설, 광대소학지희(笑謔之戱) 기원설(우희영향설), 중국강창문학(講唱文學) 영향설 등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설화 기원설은 판소리 사설의 근원이 되는 설화가 먼저 존재하였고, 이 근원 설화로부터 판소리가 발생했다고 보는 학설이며, 서사무가 기원설은 호남 지역에서 연행되었던 서사무가로부터 판소리가 발생했다고 보는 학설이다. 창우집단 광대소리 기원설은 여러 연희를 종합적으로 연행하던 전문 예인 집단인 창우집단, 그 중에서도 육자배기토리 무악권의 창우집단 광대들이 부르던 타령류의 소리로부터 판소리가 발생했다고 보는 학설이다.
판소리의 전개 과정은 18세기 형성기와 19세기 발전기, 20세기 전반의 전환기, 그리고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8세기는 판소리가 독자적인 공연예술로 성장해 나가던 시기로, 1754년 유진한의 『만화집』에 수록된 「가사 춘향가 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의 기록을 통해 판소리가 민간에서 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유진한의 아들 유금의 『가정견문록』에 “부친께서 호남 문물을 돌아보시고 그 이듬 봄에 집에 돌아오시어 춘향가 일편을 지으셨는데, 당시 선비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 당시 양반들 사이에서의 판소리 향유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의 소리꾼으로는 하한담(河漢潭), 최선달(崔先達, 1726~1805), 우춘대(禹春大) 등이 거론되나,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19세기는 판소리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 전반기는 이름을 날리는 명창들이 등장하는 시기로 송만재의 『관우희』에 권삼득과 모흥갑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송흥록(宋興祿),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주덕기 등을 묶어 전기 8명창이라 이르기도 한다. 많은 명창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적으로 판소리에 더늠이 개발되고 계면조와 우조 등 악조의 특징이 분명해지며,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이 확대되는 등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음악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 무렵 판소리가 12바탕 혹은 그 이상으로 완성되었는데, 송만재의 『관우희』에 판소리 12바탕이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후반기는 전기 8명창의 소리를 계승하여 다양한 더늠이 개발되고, 판소리의 발전에 따라 향유층이 양반층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양반들 사이에서도 판소리 향유가 일상화 되었다. 이에 따라 판소리에 양반들의 기호가 반영되어 사설이 다듬어지고 한문투의 사설이 삽입되었으며, 음악적인 면에서도 가곡 창법이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지역적 소리 계보에 따라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등의 유파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소리꾼으로는 박유전(朴裕全), 박만순(朴萬順), 이날치(李捺致), 김세종(金世宗) 등이 있다.
20세기 전반은 각 지역의 음악 문화가 서울로 집중되는 시기이자, 근대화에 따른 산업화와 대중화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판소리 역시 극장 무대에서 공연되기 시작하였고, 송만갑(宋萬甲), 이동백, 김창룡(金昌龍), 정정렬(丁貞烈)과 같이 큰 인기를 누리는 소리꾼들이 등장하면서 판소리의 저변이 더욱 확대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1910년대부터 일본의 음반 회사에 의해 다수의 판소리 음반이 제작되면서 대중의 기호에 민감해졌으며, 1920년경 전국 주요 도시에 권번이 설치되면서 여성 창자들이 등장하였고, 보다 화려한 볼거리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여 한 사람의 창자가 아닌 여러 창자가 배역을 나누어 공연하는 형태인 창극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통의 변화는 판소리 자체의 변화를 야기하였는데,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여 판소리가 획일화, 정형화 되었으며, 창극소리의 등장으로 판소리가 통속조로 흐르게 되었다.
해방 후 1950년대 한국전쟁이라는 암흑기를 지나, 1964년 판소리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게 되면서 국가의 지원 아래 판소리가 보호 전승되었다. 1980년대 여러 대학에 국악과가 개설되면서 대학 정규 과정을 통해 판소리가 교육되었고, 판소리의 학문적 연구도 국문학, 민속학, 공연예술학, 음악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창작판소리 작업도 활기를 띠면서 전통 다섯 바탕에 기반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창작소리도 등장하였다. 2003년에는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판소리는 한강 이남 서부 지역인 경기 남부와 충청남도,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발달하였다. 판소리는 전문음악인들이 연행하는 장르로서 기층민(基層民)들에 의해 연행되던 민요와는 그 성격이 다르지만, 판소리 역시 각 지역의 음악 어법에 기초하여 있고, 지역에 따라 전승 계보가 형성되면서, 지역적 특성과 전승 계보에 따른 유파가 형성되었다. 판소리의 유파는 전라도 동북 지역의 소리제인 동편제, 전라도 서남지역의 소리제인 서편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의 소리제인 중고제(中高制)로 구분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유파에 관계없이 다양한 스승에게 소리를 학습하면서 유파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동편제는 운봉 · 구례 · 순창 · 흥덕 등지의 전라도 동북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소리제로, 순조 때의 명창 송흥록의 소리법제를 표본으로 한다. 동편제는 송흥록에서 송광록(宋光祿) · 박만순 · 송우룡(宋雨龍) · 송만갑 · 유성준(劉聖俊)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를 주축으로 하며, 그 밖에 김세종 · 장자백(張子伯), 정춘풍(鄭春風) · 박기홍(朴基洪)으로 전해지는 소리제 또한 동편제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동편제 소리는 비교적 꿋꿋하고 점잖으며 기본 어법에 충실한 소리로, 우조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는 특징이 있다.
서편제는 보성 · 광주 · 나주 등지의 전라도 서남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소리제로 철종 때의 명창 박유전의 소리제를 표본으로 한다. 박유전으로부터 이날치 · 김채만(金采萬)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를 주축으로 하고, 그 밖에 정창업(丁昌業) · 김창환(金昌煥) · 김봉학(金奉鶴)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로 큰 줄기를 이루었다. 서편제 소리는 비교적 계면조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져 기교를 살려 부르는 특징이 있다.
중고제는 경기도 · 충청도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로 순조 때의 명창 김성옥(金成玉)의 소리제를 표본으로 한다. 김성옥으로부터 김정근(金定根) · 황호통(黃浩通) · 김창룡으로 전하여지는 소리제와 순조 때의 명창 염계달 · 고수관 · 한송학(韓松鶴) · 김석창(金碩昌)으로 전하여지는 소리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중고제 소리는 전라도 지역의 소리인 동편제나 서편제와는 그 특징이 다른데, 서편제보다는 동편 소리에 가깝다. 경기 충청 지역의 음악 어법과 닮아 있는 판소리 평조를 많이 쓰고, 시김새 사용이 적으며, 장단에 구애받기 보다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특징을 보인다. 20세기 전반 이후로 전승이 끊어져 현재는 중고제 판소리를 잇고 있는 이가 없다.
판소리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춘향가」에서는 김소희, 김연수, 김여란, 성우향 명창이, 「심청가」에서는 정권진, 조상현 명창이, 「수궁가」에서는 정광수, 박초월 명창이, 「흥보가」에서는 강도근, 박록주 명창이, 「적벽가」에서는 박동진, 박봉술, 한승호 명창이 1세대 보유자로 지정되어 판소리 전승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는 「춘향가」에 신영희, 안숙선, 「심청가」에 정회석, 김영자, 「수궁가」에 김수연, 「흥보가」에 이난초, 정순임, 「적벽가」에 송순섭, 윤진철 명창이 지정되어 있다. 지방문화재로는 전북특별자치도에 「춘향가」 이용길, 「흥보가」 강광래, 「심청가」 유영해, 「수궁가」 박양덕, 전라남도에 「흥보가」 박정례, 충청남도에 「흥보가」 김수향, 광주광역시에 「춘향가」 정춘실, 「심청가」 이임례, 「춘향가」 방야순, 박화순, 대구광역시에 「심청가」 주운숙, 대전광역시에 「동초제 춘향가」고향임, 세종특별자치시에 「흥보가」 임영이가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