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 예술·체육
  • 인물
일제강점기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 조선성악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양성에 힘쓴 판소리의 명창.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2년 4월경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2년(고종 9)
  • 출생지충청남도 서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보형 (전 문화재관리국,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1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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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 조선성악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양성에 힘쓴 판소리의 명창.

내용

전라도 출생. 조선 고종 말기와 민족항일기에 활약한 5명창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진양조를 처음으로 판소리에 넣었다는 김성옥(金成玉)이고, 아버지는 판소리에 삼공제비를 응용하였다는 김정근(金正根)이다.

따라서, 판소리 명문에서 태어난 셈이다. 아우 창진(昌鎭)도 명창으로, 한때 고종으로부터 참봉의 직계를 받기도 하였다. 7세 때 아버지에게서 판소리를 공부하였고, 13세 때에는 이날치(李捺致)에게 1년간 판소리를 배웠다. 그뒤 오랫동안 홀로 공부하다가 32세 때 서울에 올라와 연흥사(延興社) 창립에 공헌하였다.

1934년에는 송만갑, 이동백과 조선성악연구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였다. 「적벽가」와 「심청가」를 잘하였고다. 특히 「심청가」중에서 ‘꽃타령’과 「적벽가」 중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을 잘하였다.

원래 그의 집안은 경기도 및 충청도지역에 전승되는 중고제(中古制) 소리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김창룡도 또한 자기 가문의 소리제를 그대로 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승이 끊어졌고 취입한 음반만 남아 있다. 그의 소리는 오늘날 전승이 끊어진 중고제 판소리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음반 중에서 「적벽가」중 ‘삼고초려’, 단가 중 「장부한(丈夫恨)」, 「수궁가」에서 ‘수정궁(水晶宮) 들어가는데’, 「심청가」에서 ‘화초타령’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참고문헌

  • -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81)

  • -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4)

  • - 『조선창극사』(정노식, 조선일보사출판부, 1940)

  • - 「김창룡 명창의 음악활동에 대한 문헌적 점검-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중심으로-」(송방송, 『판소리연구』13집,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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