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록(興綠)의 아우, 우룡(雨龍)의 아버지, 만갑(萬甲)의 할아버지이다. 정조 때 전라도 함열(咸悅) 웅포(熊浦)에서 태어나 운봉(雲峰) 비전리(碑殿里)에서 살았다.
형 흥록의 고수로 여러 해 동안 수행하다가 명창이 되고자 제주도에 가서 4, 5년 동안 소리를 연마하여 흥록과 겨룰만한 대명창이 되었다. 춘향가를 잘 하였고, 특히 춘향가에서 긴 사랑가 만첩청산(萬疊靑山)이 더늠(장기)으로 전해진다.
신재효(申在孝)는 그의 『광대가(廣大歌)』에서 아홉명의 명창 가운데 하나로 꼽았고, ‘창전벽해 걸릴 데가 없었으니 만리풍범(萬里風帆) 왕마힐(王摩詰)’이라 평하였다. 그의 소리제는 아들 우룡에게 전해져서 판소리 동편제(東便制)의 큰 인맥을 형성하였다. 중년 이후에는 구례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