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출신. 명창 이날치(李捺致)와 김창환(金昌煥)과는 이종간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자라면서 박만순(朴萬順)으로부터 배우다가, 뒤에 정춘풍(鄭春風) 밑에서 다년간 판소리를 수학하여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학식이 있고 재주가 있어서 판소리뿐만 아니라 정악(正樂)도 잘하였고, 거문고와 가야금·피리·젓대도 일가를 이루었다. 서울에 올라와 대원군의 인정을 받아 오수경(烏水鏡)을 하사받았고 참봉의 직계를 받았다.
학식과 여러 음악에 정통하였으므로 판소리 또한 동편제(東便制)의 전통인 우아하고 정대한 소리를 하여 ‘가선(歌仙)’의 칭호를 받았으나, 그의 소리를 이은 제자들이 많지 않았다.
동편제 명창으로서 동편제의 전통을 끝까지 지킨 종장(宗匠)이지만, 최후의 소리가 전하여지는 것이 없고 음반으로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순종 때의 명창인 김봉문(金奉文), 후의 김정길(金正吉)·박녹주(朴綠珠)·조학진(曺學珍) 등은 그의 문도(門徒)의 길을 거쳐간 명창들이다. 일생을 신선같이 온화하고 근엄하게 살았다 한다.
「춘향가」와 「적벽가」를 잘하였고, 특히 「적벽가」중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와 ‘장판교대전(長板橋大戰)’은 신출귀몰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