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만재

  • 예술·체육
  • 인물
조선후기 「관우희오십수」를 저술한 판소리연구가.
이칭
  • 취송(翠松)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산(礪山)
  • 사망 연도1851년(철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순릉직장
  • 출생 연도1788년(정조 12)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사훈 (전 서울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관우희오십수」를 저술한 판소리연구가.

내용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취송(翠松). 서울 출신. 조선 후기 판소리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의 저자.

그의 가문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명문으로서 그의 종형 면재(冕載)는 예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낼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과업(科業)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고 부모 봉양에만 힘쓰다가 그의 어머니가 죽은 6년 뒤에야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 뒤 1848년(헌종 14)에 원릉참봉이 되고 금부도사를 거쳐 순릉직장(順陵直長)에 이르렀다. 그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아들 지정(持鼎)이 184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을 때 아들을 위하여 창우(倡優)들이 벌이는 판소리·줄타기·땅재주 등의 놀이를 주제로 한 「관우희오십수」를 지어주었다.

「관우희오십수」의 서문에 의하면 과거에 합격한 아들에게 삼일유가(三日遊街) 후 벌이는 잔치에 창우들을 불러들일 돈이 없어 대신 글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각 놀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판소리연구 및 창우들의 연희에 대한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 - 『한국연희시연구』(윤광봉, 이우출판사, 1987)

  • - 「관우희」(송만재, 『인문과학』2,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68)

  • - 「송만재의 관우희」(이혜구, 『중앙대학교 논문집』1, 195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