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헌종 때 충청도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소과에 합격, 진사가 되었으나 판소리를 익혀 명창이 되었다. 스스로 호를 춘풍이라 하고 판소리를 즐기며 한 세상을 살았는데, 학식이 있어 판소리 이론정립에도 공이 크다.
자기 이념대로 새로운 판소리를 개척하였는데, 사설(私說)을 정비하고 소리를 우조(羽調) 중심으로 짜서 매우 품위 있는 판소리로 이끌어나갔고, 이 점이 대원군에게 인정을 받아 대원군과 가깝게 지냈다.
그의 판소리는 고종 때의 명창 박기홍(朴基洪)과 조기홍(趙起弘)에게 이어졌으나, 그뒤로는 끊어졌다. 「적벽가」를 특히 잘하였고, 단가 「소상팔경」이 그의 더늠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