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당나라 군사제도를 본떠서 중앙군으로 10위(衛)를 설치하였는데, 우맹분위는 그 중 하나이다. 각 위의 임무를 알 수 없어 우맹분위의 임무도 분명하지 않은데, 다만 당나라의 제도를 참조하여 궁궐 숙위(宿衛)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신당서(新唐書)』발해전(渤海傳)에 의하면 우맹분위에는 대장군 1인과 장군 1인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대실록(三代實錄)』권21에 871년 부사(副使)로 일본에 갔던 우맹분위소장사자금어대(右猛賁衛少將賜紫金魚袋) 이흥성(李興晟, 또는 李與晟)이 나타나고 있어 장군 아래에 소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