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학자, 정경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57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지사항
별집은 권1에 시 36수, 교서 1편, 자첩 6편, 소차 7편, 사장(辭狀) 2편, 계사 3편, 서(書) 19편, 서(序) 2편, 논(論) 1편, 습유 1편, 권2에 사문록(思問錄) 4편, 양정편(養正篇) 3편, 권3에 경연일기, 권4∼7에 저자의 연보, 권8에 언행록, 권9에 묘지명 · 신도비명 · 묘표, 권10에 송준길(宋浚吉)의 행장, 권11에 송시열(宋時烈)의 시장(諡狀), 권12에 사제문 4편, 제문 25편, 만사 22수, 봉안문 1편, 상향축문(常享祝文) 1편, 권말에 하묵의 발문이 있다.
내용
저자의 일대는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속해 있어서, 이 문집에는 어느 문집보다 역사적 자료가 풍부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소차에는 정치와 국방에 대한 자료들이 많이 보인다.
원집 권3의 <옥당청자강차 玉堂請自强箚>에서는 자강정신(自强精神)의 고취를 강조하면서, 국왕을 포함한 중앙 정부의 확고한 주체 의식과 철저한 전투 태세를 갖출 것을 역설하고 있다. <옥당청수도성차 玉堂請守都城箚>는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도성의 사수를 간청한 것이다. 이 소에서 저자는 국왕이 종전의 모든 의식과 습속을 버리고 직접 제일선에 나가 민중의 선두에 서서 싸워줄 것을 역설하였다.
원집 권4의 <홍문관팔조소 弘文館八條疏>는 국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먼저 힘써야 할 여덟 가지 항목을 들었다. 첫째 큰 뜻을 세울 것(立大志), 둘째 성학에 힘쓸 것(懋聖學), 셋째 종통을 중요시할 것(重宗統), 넷째 효경을 다할 것(盡孝敬), 다섯째 간쟁을 받아들일 것(納諫諍), 여섯째 시청을 공정하게 할 것(公視聽), 일곱째 궁성을 엄하게 다스릴 것(嚴宮禁), 여덟째 인심을 진정할 것(鎭人心) 등이다.
원집 권5의 <옥당논시무차 玉堂論時務箚>는 자강정신의 바탕 위에서 절용(節用) · 치병(治兵) · 안민(安民)의 세 가지 당면 정책이 시급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절용은 왕과 궁정의 경비를 절약하고 국가 재정을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치병은 호패법(號牌法)의 실행과 포수만명양성론이다. 안민은 전통적인 민본주의 이념에서 온 일반 이론이 아니라, 16세기 이래 조선왕조의 사회적 동요로 인한 민생의 파탄을 막고, 인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민지상(安民至上)의 정론(正論)을 피력한 것이다.
저자는 특히 안민을 위하여 대동법(大同法)의 장점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한편, 양전(量田), 즉 토지 측량을 반드시 실행하여 민부(民賦)의 공평을 기할 것을 아울러 주장하였다. <논답로서차 論答虜書箚>는 우리 나라가 외교 문서에서 너무 저자세를 일삼지 말고 시비곡절을 가려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잡저 중 <이지봉채신록변의 李芝峰采薪錄辨疑>는 저자가 정통 성리학의 견지에서 이수광(李睟光)의 처세 철학 및 수양론에 대한 두 차례에 걸친 논변을 통해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이다. <김사계경서의의변론 金沙溪經書疑義辨論>은 ≪소학≫ · ≪대학≫ · ≪중용≫ · ≪논어≫의 의의(疑義)를 김장생(金長生)과 논변한 것이다.
김장생은 이이(李珥)의 이기원불상리설(理氣元不相離說)을 수용하고 이황(李滉)의 분이기위이물설(分理氣爲二物說)을 부인하였다. 저자는, 이와 기는 본래 일물(一物)이 아닌데 서로 분리되지 않으므로 혼융무간(混融無間)일 뿐이며, ‘무간(無間)’ 두 자를 자세히 보면 이와 기는 이물(二物)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고 하였다. 이이는 분명히 이기가 이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을 것이므로, 김장생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원집 권13의 <답송경보문목 答宋敬甫問目>은 태극과 음양에 관해 송준길(宋浚吉)과 주고받은 문답 형식의 서한이다. 별집 권2의 <사문록>은 ≪주역≫ · ≪예기≫ · ≪의례≫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적어둔 것이다.
원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아울러 전인(前人)의 주소(注疏)에 대해 개정을 가한 것으로 경학에 일정한 공헌을 남겼다. ≪주역≫에 있어서는 ≪역학계몽 易學啓蒙≫ 및 ≪계몽전의 啓蒙傳疑≫에 대해 동양 철학의 기본 문제를 다루면서 적지않은 신설(新說)을 발표하였다.
<양정편>은 ≪향교예집 鄕校禮輯≫의 동자례편(童子禮篇)을 간추려 이를 약간 수정한 것이다. 일상생활의 기거동정(起居動靜)과 규범을 밝히고 있다. 별집 권2의 <경연일기>는 1623년(인조 1) 5월 15일부터 1629년 10월 20일까지 7년 동안 42회에 걸쳐 조강(朝講) · 주강(晝講) · 야대(夜對)를 통해 군신간에 문답한 상세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문답은 경의(經義) 그 자체보다 경의와 관련해서 정치 · 경제 · 군사 · 외교 등 시국 관계의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일기의 내용은 당시 지배층의 사고 방식과 각 지방의 민정 · 풍속 등 조야 전반의 정치적 · 사회적 동향을 숨김없이 잘 전해주고 있다.
<서중문 誓衆文> · <여진잠일향문 與鎭岑一鄕文> · <모량격 募糧檄> · <상김초유성일게 上金招諭誠一啓> 등은 임진왜란 때 의병의 소집, 군량의 조달에 관한 글들이다. <모도독회첩 · 회자 毛都督回帖回咨> · <원군문숭환계첩 袁軍門崇煥揭帖> · <유부총흥치회첩 劉副摠興治回帖> · <답김주첩 答金主帖> 등은 당시 우리 나라의 역사 자료로서뿐 아니라 동아시아, 특히 조(朝) · 명(明) · 청(淸)의 외교 교섭사로서 귀중한 문헌들이다. 규장각도서 · 장서각도서 · 충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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