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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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정축의 난과 관련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사망 연도미상
  • 본관단양(丹陽)
  • 주요 관직병영중군(兵營中軍)
  • 관련 사건정축(丁丑)의 난(亂)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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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정축의 난과 관련된 무신.

개설

본관은 단양(丹陽). 증조는 판서 우중겸(禹仲謙)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 우몽룡(禹夢龍)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영중군(兵營中軍)으로서 쌍령(雙嶺)에 이르러 청군과 힘써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때 죽음에 앞서 노복(奴僕)인 귀동(貴同)에게 당부하기를 “나는 곧 죽는다. 너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나를 위하여 뼈라도 거두어다오.” 하니 귀동이 울면서 말하기를, “이미 주인이 나라를 위하여 죽을진대 소인(奴)인들 어찌 주인을 위하여 죽지 않을 수 있으랴.” 하면서, 곧 시체 옆에서 따라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조정에서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정려하였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상주읍지(尙州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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