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후반에 저작된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東夷傳) 부여조에는 “전쟁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그 길흉을 판단하는 방식으로 소를 죽여서 굽의 모양을 보아 합하는 것을 길하다고 여겼고, 벌어지는 것은 흉한 것으로 여겼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장초금(張楚金)이 지은 『한원(翰苑)』 권30 고려(高麗 : 여기에서는 고구려를 가리킴.)조에 인용된 『위략(魏略)』에 의하면 고구려에도 이와 같은 관습이 있었다고 하며, 한편 경상남도 창원시 웅천패총(熊川貝塚)에서 6점의 복골(卜骨)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볼 때 삼한사회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관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본디 점치는 방법은 민족에 따라서 각기 조금씩 그 방법을 달리하고 있으나, 동물의 희생을 이용하는 예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동물의 갑골(甲骨)을 작렬하여 길흉을 판단하는 방식과 그 내장의 변화를 가지고 판단하는 방식의 두가지가 있는데, 부여의 우제점법은 중국고대 은나라의 갑골점법과 마찬가지로 앞의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한국과 중국 이외의 민족에도 퍼져 있는데, 학술용어로는 이를 ‘scapulimancy’ 혹은 ‘omoplatoscopy’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