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110장이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27.4㎝, 가로 19.4㎝이다. 표제는 ‘강원도원주군읍지(江原道原州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원주읍지(原州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1997년에 발행한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의 『강원도읍지』 4권에 영인 수록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에서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일본 동양문고 소장의 『관동읍지(關北邑誌)』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관동읍지』,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 도서 『관동지(關北誌)』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의 『강원도읍지(江原道邑誌)』 등에도 원주에 대한 관찬 읍지가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으로 상호 보충된다.
『원주읍지』는 1871년(고종 8)의 주2에 수록된 원주 읍지를 저본으로 하여 1899년(광무 3)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한 관찬 읍지를 일제강점기에 베껴 썼다.
수록 항목은 강계(疆界), 건치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도로, 성지(城池), 형승(形勝), 단묘(壇廟), 학교, 서원(書院), 궁실공해(宮室公廨), 누정(樓亭), 창고(倉庫), 불우(佛宇), 능묘(陵墓), 전부(田賦), 요역(徭役), 군액(軍額), 군기(軍器), 조적(糶糴),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교량(橋梁), 선척(船隻),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참사(站舍), 목장(牧場), 고적(古蹟), 진공(進貢), 봉름(俸廪), 인물, 우거(萬居), 충신, 효자, 열녀, 책판(冊板), 충열비(忠烈碑), 선정비(善政碑) 순으로 구성하였다.
요역과 진보, 봉수, 도서 항목은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다. 읍지의 분량이 다른 관찬 읍지에 비해 많지만, 내용은 18세기 후반 정조 대에 그쳐 있다. 원주 지역의 다른 관찬 읍지와 다르게 선생안 항목이 빠져 있다.
이 읍지의 구성은 『여지도서(輿地圖書)』를 증보한 유형에 해당하며, 이에 따라 18세기 후반 정조 대까지의 사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