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권수(卷首) 1권 1책, 원편(元編) 5권 5책, 부편(附編) 4권 2책 등 총 10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 첫머리에 8책의 총목록이 나온다.
1795년(정조 19) 윤2월 9일에 정조가 회갑을 맞은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과 화성행궁(華城行宮)에 행차하여 올린 주1 및 환궁 후의 행사 등을 정리소(整理所)에서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이 해는 정조 재위 2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는 해이기도 하였다.
정리소는 행차를 준비하는 주관 기관으로 1794년 장용영 조방(朝房)에 설치하였다. 총리대신은 우의정 채제공(蔡濟恭)이고, 정리사(整理使)는 심이지 · 서유방 · 이시수 · 서유대 등이 맡았다. 경기 관찰사로는 서용보 · 윤행임이 임명되었다. 낭청(郎廳)은 홍수영 · 구응 · 이노수 · 홍대영 · 김용순이, 감관(監官)은 변세의 · 홍낙좌가 맡았다. 의궤청은 주자소(鑄字所)에 1794년 2월 28일에 설치되었으며, 이 의궤(儀軌)의 정리자 인출 작업은 1797년 3월 24일부터 시작되었다.
권수는 택일(擇日), 좌목(座目), 도식(圖式)으로 구성되어 있다. 택일은 행사의 주요한 날짜를 뽑은 것이다. 좌목은 행사를 주관한 정리소와 의궤를 편찬한 의궤청의 명단이다. 도식은 행궁 배치도와 행사의 주요 장면 그림, 기물 도식, 반차도(班次圖)로 구성되었다. 「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를 비롯하여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방방도(放榜圖)」, 「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操圖)」,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신풍루사미도(神豊樓賜米圖), 「주교도(舟橋圖)」, 「연희당진찬도(延禧堂進饌圖)」, 「홍화문사미도(弘化門賜米圖)」 등 도식 49면, 반차도 63면으로 총 112면이 판화로 제작되어 실려 있다.
권1에는 행사와 관련한 국왕의 명령이나 조정의 논의, 행사에 쓰인 글들, 국왕이 지은 글 어제(御製), 국왕이 활을 쏜 내용, 전령(傳令), 군령(軍令) 등이 실려 있다. 권 2에는 의주(儀註), 절목(節目), 계사(啓辭) 등을 실었다. 각종 행사의 자세한 의식 절차와 각 행사에 필요한 업무 규정 등의 내용을 수록하였다. 권3에는 정리소와 다른 기관 사이에 행사(行事)와 관련하여 주고받은 공문 등이 실렸다. 권4에는 주로 찬품(饌品), 기용, 배설, 의장 등 행사에 쓰인 물품과 설비 내역, 행사에 사용된 금액 등을 기록하였다. 권5에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행사에 참여한 인물들의 이름 및 숫자를 싣고, 마지막에 재용(財用)을 실었다.
부편은 원행을 전후한 왕실의 주요 행사에 대하여 각각 전교에서 상전에 이르기까지 제반 기록을 담은 4편이다. 부편1 ‘탄진경하(誕辰慶賀)’는 1795년 6월 18일 서울 연희당에서 혜경궁 홍씨의 정식 회갑연을 열었던 기록이다. 부편2 ‘경모궁전배(景慕宮展拜)’는 같은 해 1월 21일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이하여 정조가 사당에 참배한 기록을 담았다. 부편3 ‘영흥본궁제향(永興本宮躋享)’은 태조의 아버지 환조(桓祖: 1315~1360)의 탄강 480주년을 맞아 판중추부사 김희를 보내 행한 작헌례에 대한 기록이다. 부편4 ‘온궁기적(溫宮紀蹟)’은 1760년 사도세자가 충청도 온양의 온천 행궁에 행차하여 활을 쏘던 영괴대를 세운 사적을 기념하기 위해 1796년 정조가 영괴대비(靈塊臺碑)를 세운 것에 대한 기록을 적은 것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최초의 활자본 의궤이며, 동활자를 주조하여 간행하였다. 화성행궁 행차는 그동안 정조가 추진해 온 사도세자 존숭 정책을 일단락하고, 국왕의 권위를 온 나라에 과시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의궤에는 화성행궁에서 벌인 혜경궁 홍씨를 위한 회갑연, 백성들에게 베푼 양로연, 군사 훈련, 화성에서 거행한 문무과 별시 등의 주요 행사 및 행사도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조선의 인쇄 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서적이며, 또한 정조의 화성 행차 장면을 채색화로 그린 『화성능행도병(華城陵行圖屛)』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