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권 ()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정측면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정측면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사문박사, 우산기상시한림학사, 동지추밀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정평(正平)
시호
문간(文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32년(인종 10)
사망 연도
1196년(명종 26)
본관
유주(儒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익양부녹사|사문박사|우산기상시한림학사|동지추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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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사문박사, 우산기상시한림학사, 동지추밀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유주(儒州: 文化)이며, 자는 정평(正平)이다. 태조 때의 공신인 유차달(柳車達)의 6세손이며, 부친은 검교소부소감 유총(柳寵)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시문에 능하였고, 특히 초서와 예서를 잘 썼다. 1160년(의종 14) 5월 과거에 급제하여 청주목(淸州牧)의 서기(書記)로 3년간 있다가 익양부녹사(翼陽府錄事)가 되었다.

명종 초에 내시(內侍)로 들어가 사문박사(四門博士)·직사관(直史館)을 거쳐 병부낭중(兵部郎中)이 되었다. 1186년(명종 16) 1월에 예빈경(禮賓卿)으로 금나라에 가서 만춘절(萬春節)을 축하하였는데, 이 때 금나라 사람들로부터 예절을 잘 안다고 칭찬을 받았다.

귀국 후 우부승선이 되었다가 뒤이어 우승선(右承宣),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을 역임하였다. 1192년 4월 한림학사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 29명을 뽑았으며, 이듬해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지주사(知奏事) 지이부사(知吏部使)를 거쳐 1194년 12월에 동지추밀사(同知樞密事)에 올랐다.

이듬해 유공권이 병이 나서 친척들이 약을 지어 바치자, 죽고 사는 것은 명(命)이 있다고 하면서 물리치고 마시지 않았다. 병이 심하여지자 정당문학 참지정사 판예부사(政堂文學參知政事判禮部事)에 특임되었으며, 1196년(명종 26) 7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성품이 청렴하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부지런하였다고 한다. 『동문선(東文選)』에 시가 남아 있고, 『해동필원(海東筆苑)』에 필적이 전하며, 용인 서봉사(瑞峯寺)에 있는 현오선사비문(玄悟禪師碑文)도 유공권의 글씨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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