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수

  • 예술·체육
  • 인물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된 체육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찬모 (단국대학교, 체육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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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된 체육인.

내용

개화기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1909년 1월 동경에서 설립된 재일본 한국 유학생 단체인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윤기현(尹冀鉉)·변희준(邊熙駿) 등과 같이 대한흥학회의 운동부를 맡아 모국을 방문, 운동을 지도하였다.

같은 해 여름방학인 7월 21일 25명의 부원이 경성의 훈련원에서 서양선교사 야구팀과 경기를 가져 19:9로 승리, 장안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는데, 이때 투수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7월 24일부터 평양·개성·선천·안악·철산 등지를 순회하며 야구 지도를 함으로써 초창기 우리나라의 야구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체육회 50년사(大韓體育會 50年史) 』(대한체육회, 1970)

  • - 『대한흥학회보(大韓興學會報)』 1(1909)

  • - 『황성신문(皇城新聞)』(190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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