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희(士希), 호는 정재(靜齋). 정언(正言) 유격(柳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시행(柳時行)이다. 아버지는 사인 유영(柳潁)이며, 어머니는 이윤신(李潤身)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73년(현종 14) 진사로서 정시문과에 장원하였다. 1675년(숙종 1)에는 부수찬이 되었고, 사인·부제학을 거쳐, 1678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서인 이언강(李彦綱)·박태손(朴泰遜) 등으로부터 역적 허견(許堅)의 추종자라는 탄핵을 받아 관작을 삭탈당하고 문외출송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승지로 복관되었다. 이듬해 형조판서, 1691년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다시 실각하여 흑산도에 안치되었다가, 1699년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701년 장희재(張希載)와 공모하여,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해치려 하였다는 죄로 탄핵받아 다시 남해도에 안치되어 그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