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우(子遇), 호는 회당(悔堂). 아버지는 연산현감 유원리(柳元履)이며, 어머니는 고창오씨(高敞吳氏)이다. 유원지(柳元之)의 문인이다.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합격, 1675년(숙종 1) 내시교관(內侍敎官)을 비롯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거쳐 공조좌랑·군위현감을 역임하였다. 유세철은 효종이 죽은 뒤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대하여 경상도 유생을 대표하여 「상복고증(喪服考證)」 29조를 지어 서인측의 기년설(朞年說)을 반박하는 「의례소(議禮疏)」를 올렸다.
군위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그 고을의 서생들을 학사(學舍)에 모아놓고, 봄·가을로 학문을 강의, 후진 양성에 힘쓰는 등 현저한 치적을 남겼다. 유세철은 시문에도 능하여 당시에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저서로는 『회당문집(悔堂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