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부교리·부응교·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31년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고, 이듬해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1735년 충청도관찰사, 1739년 황해도관찰사, 1743년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뒤 1745년 형조판서가 되고, 그 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어 청양군(菁陽君)에 봉해졌다.
1729년 천추절(千秋節)을 맞이하여 왕실의 만수무강을 비는 차자(箚子)를 올려, 왕으로부터 『근사록(近思錄)』 한 질을 상으로 받았다. 또, 그 해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외방사찰(外方寺刹)의 요승(妖僧)을 엄단하여 사찰의 정화를 단행하였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혜정(惠靖)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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