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숙(思叔)
  • 성암(省庵)
  • 시호혜정(惠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황해도관찰사|경기도관찰사|예조판서|한성부판윤
  • 출생 연도1692년(숙종 1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갑주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유엄 글씨 미디어 정보

유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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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숙(思叔), 호는 성암(省庵). 중종반정의 공신 유순정(柳順汀)의 후손이며, 유장운(柳長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유관(柳綰)이고, 아버지는 유정진(柳挺晉)이며, 어머니는 박태정(朴泰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에 정언(正言)이 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지평(持平)으로 등용되어 정언과 지평을 번갈아 하였다. 1728년(영조 4)에 문학(文學), 이듬해에 헌납(獻納)을 거쳐 수찬(修撰)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부교리·부응교·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31년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고, 이듬해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1735년 충청도관찰사, 1739년 황해도관찰사, 1743년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뒤 1745년 형조판서가 되고, 그 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어 청양군(菁陽君)에 봉해졌다.

1729년 천추절(千秋節)을 맞이하여 왕실의 만수무강을 비는 차자(箚子)를 올려, 왕으로부터 『근사록(近思錄)』 한 질을 상으로 받았다. 또, 그 해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외방사찰(外方寺刹)의 요승(妖僧)을 엄단하여 사찰의 정화를 단행하였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혜정(惠靖)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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